국제자원활동 보고서

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3

 

09년 4월 17일

 

제목 : ‘오이쿠시’가는 배 이야기

 

오늘 다니던 학교에서 가져온 달력을 보니 벌써 대학교는 중간고사 기간이더라고요. 요즘이야 말로 학교시험에서부터 자유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알게 된 대학생들도 다음 주부터 시험기간이라고 이번 주는 모두 휴강이라고 합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삶의 시험 가운데 지혜롭게 나아가시길.....

 

첨부한 사진 속 티모르 지도와 같이 동티모르라는 국가는 지리적으로 12개의 주(州)로 구성 되어있는데 그중 1개 주(州)인 오이쿠시는 완전히 분리되어 인도네시아 속에 들어 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배를 이용하는 것(해로(海路))과 인도네시아 비자를 발급받아서 국경을 통과하는 것(육로(陸路)) 두 가지입니다. 하지만 육로의 경우 여권과 비자가 필요하고 국경을 통과하는 부담감과 차량 비용 문제로 사실상 현지인들에게는 기피하는 길입니다. 그마저 배를 이용하는 경우 일주일에 두 번 (월,목)뿐이고 이동시간도 거리에 비하여 상당히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12시간) - 참고로 티모르의 나라 크기는 한국의 강원도 면적 정도입니다. - 사실 이런 이동의 문제가 이상하고 답답한 것을 떠나서 나라의 국토 개념에서 어떻게 저렇게 분리된 형태가 가능할까? 독립(02년 5월)을 하면서 차라리 오이쿠시지역을 포기하게 되거나 인도네시아가 지역적 유리함으로 계속 지배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의문이 들어서 주위 분들과 책을 찾아보니 사실 그 속에는 동티모르가 가지고 있는 식민역사의 아픈 잔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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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르 섬의 서쪽지역에 ‘오이꾸시’ 라고 불리는 동티모르의 땅이 일부가 있다. 1515년 포르투갈인 선교사가 상륙했던 곳으로서 포르투갈 시대의 영광을 기념하는 곳이다. 리스본 조약 (1859)에 의해 네덜란드에게 양도되었고 1904년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조약에 의해 동과서의 국경이 확정되었다. 두 번의 조약을 거치면서도 포르투갈이 포기하지 않았던 곳이 바로 오이꾸시이다. 그리고 이 지방의 영주가 포르투갈인 혼혈이어서 더욱 네덜란드령에 편입되는 것을 반대했다. 티모르 섬 원주민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대국의 마음대로 국경이 정해진 것이다. 유럽 식민주의의 잔재라고 할 수 있고 인위적인 국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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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갑자기 티모르의 지리를 이야기하면서 역사까지 말한 이유는 동티모르에서도

가장 낙후되고 형편이 어려운 편에 속하는 “오이쿠시”라는 지역으로 한국NGO 단체인 “개척자”를 도와 평화학교를 2주간 진행하는 것을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이쿠시에 가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일주일에 두 번 가는 배가 수리를 위하여 다른 지역에 간다고 운행을 중단하였습니다. 다른 배로 수송의 대체할 것이라는 우리의 순수한? 예상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평화를 생각해 보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물론 컸지만 그 보다는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가는 유일한 배를 그저 한없이 항구주위나 목적 없이 외지에서 계속 기다리는 이곳 분들을 보며, 그리고 긴급한 일이나 위급한 사고 앞에서도 그저 좌절해야하는 이들의 삶을 보며 마음이 무겁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시간의 단축으로 비유되는 우리의 교통 시스템의 발전을 바라보며, 부(富)편중과 몇몇 나라가 구가하고 있는 윤택함이 가지고 있는 불평등한 구조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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