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D-14.

끝날것 같지 않았던 '여름'이 거진 끝나간다.
올해의 여름은 내게 유난히 더웠고, 뜨거웠으며, 또한 길었다.
캄보디아행 비행기에서 떠올랐던 수많은 걱정들과, 불안함들.
권유하는이 없이 내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었고,
오히려 봉사는 무슨 봉사냐며, 이제 3학년인데 맘잡고 공부나 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어야만했다.
왜 난 이길을 선택했을까.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5개월이란
기간은 너무 길었고, 캄보디아는 너무나 멀었다.
'라온아띠'를 지원할 시기 난 심적으로 매우 지쳐있었다.
소소한 일도 즐길 여유가 없었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정해진 길로 순서를 정하며사는데 나만 방황 하는것만 같았다. 점점 팍팍해져갔고 웃음도 잃어갔다.
그때 문득 어린시절이 그리워졌다. 알록달록 경쾌한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싶었다. 그때 가지고 놀던 모든 소꿉놀이와, 단짝은 '아이'시키고
그저 '엄마'흉내만 내던 내 순수하던 때로 아무 미련없이, 전혀 돌아보지 않고돌아가고 싶었다.
'라온아띠'를 지원하면서 난 봄을 준비하는 소녀처럼 마냥 설레었다.
1차 서류전형을 합격하고, 2차 면접을 치루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다.
23:1의 경쟁률을 통과했다는 것도 있었지만, 이기적이고 불만만 가득했던 내가 마치 사랑을 전하는 '천사'가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캄보디아에 왔다.
막상 캄보디아에 도착하니 마음이 편했다. 모든것이 새로웠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내가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낯선 우리들에게 웃어주었고, 친구가 되길 바랐다. 사람 사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나도 꽤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온지 몇일 되지 않아 어쩌면 예고 되었던,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난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빈민가에서 헐벗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내 주머니100리엘 짜리 하나라도 꺼내 건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주머니에 손을 뺐다 넣었다를 여러번, 결국은 건내주지 못하고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야 했다.
아이코리아에서 받았던 강의 내용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고, 실제로 빈민가의 사람들이 이미 들어와있는 많은 NGO단체들의 도움을 받으며 별 노력없이 살고 있었다. 
자칫 위선으로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고, 그들이 구걸로 삶을 연명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했다. 그 선을 지키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진 집짓기 사업.
혜민 언니,나, 초이, 은정이 이름으로 언동마을이란 빈민가에 집을 4채 짓는 사업을 시작했다. 집을 짓는데 한 채당 드는 돈은 300불. 100리엘 짜리 하나 주는 것도 고민이었던 내게 집짓기 사업은 더 고민해보아야할 문제었다. 모두 똑같이 가난한 빈민가에서 4채만 선별한다는 것이 도토리 키재기었다. 하지만 내게는 이건 아닌것 같은데요.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촬영까지 겹쳐 그저 따라가기로 했다.

솔직히 세 채는 아무 생각 없이 지었다. 삽질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봉사를 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고, '팔뚝 보고 뽑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 체력했던 우리 넷이 드디어 제 몫을 다하고 있는것 같았다.

위기이자 기회가 온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촬영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그냥 언동마을에서 삽질 몇 번하고, 벽돌 나르고, 별 고민 없이 집만 짓고 있던 우리에게 KBS측은 집을 지어주는 대상을 선정하는 것 부터 시작해 하다 못해 집을 짓는 자제를 고르는 것 까지 모두 '능동적'으로, 우리 스스로 할 것을 요구했다.
다행히도 우리 넷은 모두 이것을 '기회'라고 여겼다.

처음엔 집짓기 사업에 부정적이었던 나도
한 가정이 우리의 땀방울로 지어진 집에 행복해 하는 걸 보면서
나누는 것에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자고, 그저 그들의 삶을 격려하고
눈맞추고 입맞추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마음 먹게 되었다.


벌써 4개월하고도 2주가 흘렀다.
공항에서 엄마랑 다시는 못 볼듯 울고 불고 헤어진지가 어제 같은데
몇일 전 내게 엄마는, 서울은 많이 춥다며 두꺼운 겨울 옷 챙겨 공항으로 나오시겠단다.
뜨거웠던 여름은, 5시간만에 코빨개지는 시린 겨울이 될 것이다.
상상만해도 뼈 쏙까지 시려온다.
여름과 작별을 준비하는 이 순간. 이 곳에서의 추억들이 머리속에 스친다.
웃고 있던 얼굴들. 스미고간 미소들. 기분 좋게 머물다간 자리들. 함께 나눴던 이야기...
12번의 종이 울리면, 변했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돌아와버리는
신데렐라의 이야기와는 달리 이 모든 것들은 변하지 않고 나와 영원히 함께 하길 바란다.



잘읽었습니다..^^ 멋집니다!!
2009.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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