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엘메라도 앗사베 마을에서는 서티모르에서 귀환했던 난민의 습격을 받아 주민 5명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와 반대로 귀환했던 통합파의 민병이 주민들로부터 공격받았다는 보고도 있다. 동티모르의 난민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동티모르의 난민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분류를 하자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인도네시아 침공 시기에 외국으로 나갔던 사람, 두 번째로 1999년 소란 이전 인도네시아 점령 시기에 떠난 사람, 세 번째는 1999년 소란 시 탈출했던 30만 명이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인도네시아에 대항했던 세력이고, 세 번째의 경우가 복잡한 양상을 띤다.
세 번째의 경우는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동티모르로 이주했던 인도네시아 사람들, 동티모르 사람이지만 인도네시아의 통치를 원했던 사람들, 인도네시아와의 합병을 주장했던 통합파 민병으로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연행되었던 사람들과 정치적 신조와 무관하게 폭력을 피해 갔던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보통 지금의 난민 문제는 세 번째 경우에서 발생하고 있다. 반 인도네시아 합병의 성향인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귀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보복이나 법에 의한 처벌에 있어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동티모르 정부와 UNHCR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많은 수가 돌아왔고, 대략 2만 5000명 정도(2005년 추정)가 외국에 난민으로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은 이들은 귀환 후 복수를 우려하고 있거나, 실제 민병대로 활동을 하며 살인을 했던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범죄의 사실이 있을 경우, 동티모르 정부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된다.
2005년 여름, 자발적 귀환은 거의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귀환과 재정착을 위해서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게 되었다. 보통의 방법이라면 도저히 해결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합파의 유력자와 민병대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구분이다. 이들을 전쟁 난민으로 분류해야 할지, 전쟁 범죄자로 고려해야 할지 쉽지 않은 결정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귀환이 정치적 문제가 되어 다시금 복수의 피바람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어려운 결정 사이에서 동티모르 내부와 국제사회 모두 확실한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실 화해 위원회’와 같은 정부 기관과 몇 개의 NGO(한국의 경우, ‘개척자들’)은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감정의 고리를 풀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오래 떨어진 사람 사이의 영상을 운반해주거나, 서로에게 일어난 일을 확인하고 이해하고 화해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전체로 본다면 극히 적은 사람들의 경우이다. 가족의 죽음, 친구의 죽음, 격변의 시기의 감정의 골이 한 세대 안에서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낙관적이다 못해 어설픈 기대가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과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몇 해 전, 한국에도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사법적인 힘은 없었다. 친일파 규정문제에서도 많은 논란을 빚었다. 한세대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끝내 해결되지 못한 응어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는 어설픈 낙관은 미래에 더 큰 문제로, 해결하기 점점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진 후에야 날개를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