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한국에서 1개월, 현지에서 어엿 4개월. 7월에 처음 만나 8월에 현지로 온 우리.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 하루 종일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오전엔 밖으로 나가 함께 일을 한다. 가족이라고 하기에도, 아니 이건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개념이다. ‘가깝다‘ 라는 말은 단순히 공간을 의미하는 물리적 개념을 넘어, 마치 내 분신처럼, 그림자처럼 온 하루를 함께 보내며 같은 곳을 본다. 어제 타쿰 시티에 있는 마트에 갔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난 이곳에서 4개월 동안 동네 슈퍼마켓조차도 혼자 가본 적이 없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시는 따따이(사무총장님)의 영향도 있지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왜, 우린 코앞에 구멍가게 조차도 항상 셋이 함께 갔을까.

 

 


 

part 2. 내부의 갈등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다섯과 셋은 확연하게 다르다.
그래서 좋을 때가 있고, 그래서 나쁠 때도 있다.
그리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를 때도 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다섯일 때는 오늘 하루 나 하나 입 다물고 있어도 별 파장이 없었다. 그러나 셋일 때는, 누구 하나가 조용하면 그 날 하루는 우리 모두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누구 하나가 기운 없이 쳐져 있으면 어느 새 우리 셋이 나란히 물 먹은 솜이불 마냥 축 쳐져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그 날 하루 우리 팀 전체의 분위기가 바뀐다. 한명이 기침하면 다 같이 콜록콜록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그 팀에게 있어 차지하는 영향이 1/5에서 1/3 으로 커지면서 그 만큼 우리는 책임감도 함께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일일평가서를 작성하는 시간, 혹은 팀 회의를 하는 시간에 한 명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진행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그 시간엔 열심히 집중해야 한다. 설거지나 쓰레기가 가득 쌓이게 되면 그런 상황을 만든 것도, 처리하는 것도 너와 너 아니면 나다. 그래서 못 본척 슬쩍 미룰 수도 없다. 나 하나의 게으름과 이기심이 조금이라도 섞이게 되면 내가 미룬 그 몫이 다른 팀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전보다 좀 더 부지런해져야 했다.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이어 해야겠다.
왜 우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도 함께 다녔을까.
하여간 지지배들이란- 하고 쯔쯔 혀를 차며 보통 여자애들이 우르르 떼지어 다니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




먼저, 우리 셋의 성격을 살펴보자.
23살 박초영, 22살 김지은, 강지혜. 처음엔 나이는 비슷한 데 어쩜 이렇게도 캐릭터가 다 다를 수가 있나 싶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성격을 선으로 나타내본다면 우리는 각자 다른 선 위에,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맨 끝에 서 있을게 분명했다. 물론 사람은 모두가 다 다르다.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관점, 성격, 취향, 생활패턴, 종교, 옷 입는 스타일, 남자 보는 눈까지 모든 게 다 달랐다. 혈액형도 초영 언니는 O형, 지혜는 A형, 나는 B형이다. 밖에서 보면 여자 셋이서 둥글게 별 탈없이 잘 살것 같겠지만, 슬프게도 우린 둥글한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큰 공통점이 하나 있는 데 ‘무뚝뚝’ 하다는 것이다.
무슨 여자애들이 어찌나 애교 하나 없이 딱딱한지 흡사 ‘나무 토막’ 들 같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기운 내라고 위로하는 말,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애초에 안 배운 사람들처럼 달달한 종류의 말은 죽어도 입 밖으로 못 꺼낸다. 거기다 공교롭게도 우린 다 첫째이다. 첫째의 전형적인 성격을 다 갖춘 우리는 어렷을 적에 화장실도 혼자 다녔더랜다. (이건 여자애들 사이에선 파격적인 사실이다!)





첫째들이 그렇듯이 우리 언제나 강한 ‘척’ 한다.
안 힘든 척, 안 외로운 척, 안 슬픈 척, 상처받지 않은 척.
옆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고 끙끙댄다. 그러나 그게 상대방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남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 시려워서. 하지만 괜찮은 척 한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다.

  

 

우리가 활동하는 시간이 기껏해야 2 주정도 였다면 우린 아마 서로의 최고의 모습들만 봤을 것이다. 최대한 웃는 낯으로, 최대한 나의 장점을 부각해서, 가장 착해보이는 모습들로 각자 한껏 포장 했겠지만, 그런 상태로 6개월을 유지하기엔 우리의 연기 실력은 형편 없었다. 내숭 같은 건 집어 치운지 오래고, 10년 지기 친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최소한의 선마저훌쩍 넘어버리며 나의 본 모습을 솔직하게 다 드러냈다.





그런 과정 중 하나가, 싫은 것은 단호히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 곳에서,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도 지금의 시간들을 행복했다-하고 기억할 수 있으려면 자기가 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 내서 최대한 마음에 담겨있는 섭섭한 감정들이 없도록 말이다.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만, 만일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좋다.”라고 했다면 그 말에 끝까지 책임을 지기로 했다. 설령 사실은 괜찮지 않더라도 “괜찮다.” 라고 대답을 했다면 끝까지 괜찮은 척 이라도 해야지 내 맘을 몰라준다며 상대방을 원망하는 것은 명백한 반칙이다.


“꼭 그걸 말로 해야 아니?” 라는 질문에 우리 팀의 대답은 “예스” 다.
그래서 미리 말하지 않았었나. 우린 뻣뻣하기 그지 없는 나무토막들이라고.

 




또한 아주 사소한 것에서 오는 감정들을 사소하다고 여기지 않기로 했다.
갈등의 시발점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생기고,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 한 마디에 오래도록 상처입지만, 그게 너무 작은 사건에서 시작 된거라 섣불리 말 꺼내기가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함께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다 소소한 것들인 것을- 그래서 우린 남김없이 말하기로 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느끼고 생각하고 머릿속에, 가슴속에 담겨 있는 것 모두 다다다!



- 자기가 먹고 난 빈 그릇은 개미 끓으니까 그때 그때 설거지 해줄래?
- 세수하고 바가지에 있는 비눗물은 꼭 다 버리고 나와.
- 저번에 내가 우물물 다 떴는데 아무도 몰라줘서 솔직히 섭섭했어.




 

놀랍게도 말하기 전까진 얹힌 것 마냥 답답하던 속이, 말이 입술을 타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 탁- 트이면서 후련해진다. 우린 이토록 작고 예민한 한낱 미물인가 보다. 그러나 미물이면 어떠하랴. 지금 마음이 편해졌으면 그걸로 됐다.






팀 빌딩 시간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특별한 자체 팀웍 세레모니가 하나 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지나치리만치 솔직한 대화들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작은 생채기들을 달래주기 위한 거라고나 할까. 우린 갈등이 해소되고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오면 꼭 다 같이 한 방에 모여 명탐정 코난 극장판을 본다. 배를 깔고 바닥에 디비져서 과자 한 봉지씩을 옆에 끼고 쿠도 신이치의 활약을 보고 있자면 여기가 무릉도원이지 싶은 게 방금 전의 전쟁은 어느 새 옛날 일이 된다. 단언컨대, 우리 팀을 하나로 만들어 준 것은 절반의 솔직한 대화와 절반의 명탐정 코난 덕분이다.

 

센스 있게 매번 새로운 극장판을 다운받아 놓는 초영언니.
센스 있게 항상 어디선가 과자를 들고 나타나는 지혜.


 

우리가 남자친구가 없어서 나무 토막이 된 건지, 나무 토막이어서 남자친구가 없는 건지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를 두고 항상 결론 없는 토론을 하지만, 어찌됐든 다행이다. 우리 중 하나가 낭창낭창 애교 덩어리였다면 그 역시 감당 안됐을 텐데 셋 다 똑같아서 말이다.

 



표현은 못해도 다들 알고는 있단 말이지. (또 이럴때 보면 캐여시들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요 앞 구멍가게도 같이 가는 이유가 아닐까.








내가 발목을 다쳐 다바오 시티에 있는 큰 병원을 가게 되었는 데 2시간이 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와 준 언니와 지혜. 물론 누구 하나 옆에서 살갑게 부축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병원 로비에 있는 까페에서도 따로 앉는 게 편하다며 각자 테이블을 잡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마저도 자연스럽다. 






 
 우리도 이제 낭창낭창 해질 꼬예여......* >.< *








오휘경 너무 멋지잖아,
이 "세 여자" 와 명탐정 코난! ㅎㅎㅎ
2008. 12. 19.
원팀장 왜이렇게 분위기가 조은거야???ㅎㅎㅎ
2008. 12. 19.
수선화 자기의 색깔을 지닌채..또다른 멋진색을 빚어가는 일상의 생활이 감동이네요..
2008. 12. 20.
수선화2 얼굴은 다~이쁘구먼..나무토막들이여? 이제 낭창낭창 기대할껭..지은이! 발목은 괜찮은겨?
2008. 12. 20.
깡지 테이블이 너무 작았어. 우린 다들 한 등치 하잖아 ㅋ
2008. 12. 24.
텔라 보고싶어 귀염둥이들 ㅠ.ㅠ
2008. 12. 27.
Joo 나도 화장실 혼자갔었는데 !!
역시 첫째이기 때문이였던가 ...

떨어지기전 마닐라에서 함께했던 밤이 그립다 ,ㅎ 곧보아
2008. 12. 28.
지은아 !
4개월전 초에 메일을 보냈더니...
흑흑이다 ..... !!!!
역시 나도 너의 글에 애독자 .. ㅋ
길어서 가끔 지칠 때도 많지만.. 한달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
메일 보내 !
2008. 12. 28.
고두환 영주 넌 우리팀 제 4의 맴버야 ㅋㅋㅋㅋㅋ
2008. 12. 29.
김준호 영주야 난 왠지 너도 화장실 혼자 다녔을 것 같았어 ㅋㅋㅋ 역시!
2008. 12. 29.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76-11 | 02-754-7892 | asiaraonatti@gmail.com | 2024 한국 YMCA 전국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