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이 곳 티모르 레스테(Timor Leste)에서 느낀 '배움'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 Culture Shock

동북아시아의 한 나라, 한국에서 보낸 이십여 년의 시간은 동남아시아로 먼 바다를 건너 동티모르에서 생활한다는데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가난의 자발적 체험이라는 타이틀로 지내게 될 5개월의 기간은 결코 이 문화를 체험한다거나 이해한다거나 쉽게 내 뱉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게 될 수 있다. 글 쓰는 자신의 주관적인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한 편만을 부각해서 의도적으로 편집하거나 글을 쓸 수도 있는 점이, 이 에세이를 쓰면서 가장 크게 염려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체험하고 느낀 것들을 차근차근 담아보고, 그 문화척 역사적 차이를 나름의 시각으로 전달하고픈 것이 내가 이 에세이를 남기는 가장 큰 목적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나의 이러한 고민과 고찰이 앞으로 아시아를 다가가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객관적으로 쓰려는 노력을 할 것이지만 다분히 주관적인 내용이 들어갈 수 있음을 그리고 감상적으로 빠져들기도 하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 소모초에서 얻은 것

이미 이 곳에서 보낸 시간이 한 달을 지나 두 달째에 접어들었다. 가끔씩 내가 바른길로 가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그 때마다 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현지에 온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 이 곳 티모르 레스테(이하 동티모르)의 동부의 한 지역인 로스팔로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NGO 지구촌나눔운동 사업단의 소모초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동티모르의 최 동쪽 로스팔로스 지역의 2005년 당시 최빈마을이었던 소모초 마을은 2007-2008 2년간의 지역자치 활동을 도와 라온아띠 동티모르 팀이 방문할 당시에는 자치활동이 마을주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 지고 있었다.)








소모초 마을은 지난 2년간 지구촌나눔운동 사업단의 지원과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로 운영되는 행복기금운동으로 자치기금을 조성하여 마을 성당 보수공사를 진행하였다.

마을에 수도를 설치하고, 마을 공동 우물을 만들어 2Km떨어진 이웃마을에서 물을 길어오는 수고를 덜었다.


이 곳에서 나는 현지에서의 활동이 변화(You cause ‘change’ whether it has positive effect or negative effect)를 이끌어 내고, 그 변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발전의 밑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문화권 혹은 생활권이 다른 곳에서 의견의 차이를 좁힌다는 것이 쉽지는 않는 것이 당연하고, 마찰을 빗고 오해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현지에서 활동했던 이창덕 간사님도 어느 순간 마찰의 벽을 맞고, 회의를 느낀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과의 첫 번째 장벽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들이 발전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 즉, 변화중의 하나라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 짧은 단상

흔히 실패 혹은 잘못이라 평가되는 활동들이 현지사람들에게 그리고 봉사자들에게 하나의 변화가 된다는 것을 염두 한다면, 그 것이 옳든 그르든 발전의 밑거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앞으로 남은 4개월, 동티모르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희망을 얻은 것은 좋든 나쁘든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 곳에 와서 현지의 이들과 살아가고 있고 숨쉬고 있고 또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들 곁에서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고, 이들은 좋게 보이든 나쁘게 보이든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Culture Shock: The Difference stage #1 배움에 대한 열의

 

# prolog 배움이라는 것

라온아띠 2기 국내 훈련 중, 들었던 강의 중의 하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지역의 지역공동체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찾던 한 사람에게, 선진 교육을 필요로 했다고, 그래서 그 사람은 지역에 학교를 짓는 일로 남은 일생을 투자했다는 이야기.

정확한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교육에 대한 현지인들의 욕구는 그들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막연했었던 것들이 그 테두리를 보여준 것 같았고, 실지로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 시작

우리 라온아띠 동티모르 팀은 현지 활동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오전에 현지 언어인 테툼 수업 그리고 딜리 지역YMCA 사업 중 하나인 테라산타 YMCA 커뮤니티 센터를 방문했다. 오전에 현지언어를 배우고, 오후에 센터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수업과 도서관 운영을 견학하면서 현지 적응을 해왔다. 처음에는 센터의 아이들과 그리고 청년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관심사를 찾지 못했고, 짧았던 현지의 언어가 그들과 좀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친분을 만들어주는데 벽이 되곤 했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과 친분을 쌓는데 언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들과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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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테라산타의 아이들에게 의미하는 것

테라산타 지역의 아이들에게 YMCA 센터의 도서관은 그야말로 환상의 공간이다. 출판산업이 부실한 이 곳 티모르 레스테에서 책을 구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대부분의 책은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책이라 현지 어인 테툼어로 되어있는 책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국민 과반수의 종교가 카톨릭인 이 곳의 성경책 조차 인도네시아어를 알지 못하면 볼 수가 없다), 책장에 나열된 색색의 책들이 아이들의 눈에 비칠 때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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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앞에 책 읽어주는 외국인이 등장했다.

도서관이 운영된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우리는 테라산타를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딱히 맡은 일도 없었기에 도서관은 현지 언어에 익숙지 않은 우리들에게도 훌륭한 테툼어 교육장소가 되었다. 자연스레 아이들과 어울려 책을 읽어주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테라산타의 청년들과 말을 트기 시작한 계기는, 현지언어를 지지리도 못하는 외국인이 영어를 조금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내게서 (물론 영어도 못했지만, 단지 외국인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그들에게 현지인보다는 나을 거라는 기대를 주지 않았나 싶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했고, 나는 테툼어를 배워야 했다. 우리는 서로 아구가 맞았다.

 

# ZILOO

처음 질루를 보았을 때 그는 몇몇 청년등과 YMCA 센터 앞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5시부터 6시까지 영어교육을 해주시는 수녀님이 늦으셨나 보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가량을 걸어와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종이조각 하나와 잘 써지지 않는 펜을 들고 수업준비를 한 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현지언어인 테툼어가 서툴렀을 때 만났던 그는 여느 티모르 친구와 다르게 먼저 다가와서 테툼어를 가르쳐주면서 말을 트게 되었다. YMCA 영어교실을 보조하고 있고, 아이들과 청년들의 영어교육에 적지 않은 열성을 가진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로 기억된다. 얼마 전에 한국YMCA를 방문하셨던 어깨춤 임의진님이 해주셨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복잡한 언어는 오히려 벽을 쌓아갈 뿐인 거라고, 정말 단순한 말이야 말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라고. 그와 나는 서투르지만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목표가 있었던 친구

남달리 영어를 유창하게 했던 한 친구가 있었다. 멀리서 유심히 나를 지켜보다가 다가왔던 그 친구는 외지에서 온 NGO단체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불신이 있어 보였다. 아마도 첫 만남에서 그가 꺼낸 말이 언제 떠나느냐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대화하는 내내 신경이 쓰였던 친구였다. 단 반나절이 이 친구와 만나 이야기한 시간이었고 그 후로 보지 못했는데, 이름을 잊어버린 것이 아쉽다.

테라산타에서 공부한 6개여 월의 기간 동안 익힌 영어실력으로 현재 호주NGO에서 일하는 친구는, 다른 여느 티모르의 청년들과 다를 것이 없는 일이 없어 방황하던 친구였다. 영어를 배우고 일을 할 수 있다는 목표가 생겼을 때, 그는 하루 종일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흔히 6개월 영어 공부했다는 수준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었다. YMCA PEACE CAMP에 참여해서 한국인 친구도 있는 친구는 당시 언어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던 것 같았다. 특별하게 이 친구에게 강한 목표가 생겼던 것일까?

 

# 영어강의를 기다리는 청년들

이 외에도 스무 명 남짓의 청년들은 오후 5시 영어교육을 받으러 매일 YMCA센터로 향했고, 나는 아직도 그들과 삼십여 분 대화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티모르의 적지 않은 청년들은 할 일이 없어 오후 나절을 기타치고 노래 부르며 술로 밤을 맞이하고 있고,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질루와의 이야기는 매번 짧게 끝났었지만,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이전의 영어교육은 비 정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던 영어과정이었다. 현지인 강사자의 스케줄에 따라 교육진행이 빈번하게 변경되었는데, 현재 YMCA센터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3개월의 오후 영어프로그램을 계획했고, 5월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프로그램을 짜고 교육할 봉사자의 스케줄을 짜서, 예전의 틀이 없이 시간 되는대로 진행되었던 CLASS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의도를 엿보았다. 이 지역의 청년들이 반갑게 맞이할 만한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 배움에 대한 단상

나는 한국에서 자라 의무교육과정으로 고등학교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나의 가정환경은 다르다고 생각해왔지만 고등교육과정까지 나의 혹은 우리의 목표는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친구들은 대학진학과 달리 일찍이 취직에 대한 나름의 길을 쌓아 나갔다.) 우리는 취직에 대한 걱정이 없고, 대학 진학에 무사히 발을 올려놓으면 힘겨운 배움과의 싸움도 끝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먹고대생이 내가 기대했던 그 무엇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취직을 하든 대학을 진학하든 더 나은 삶을 위한 욕구는 배움을 필요로 한다. 배움은 끝이 없다. 그리고 그 배움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생각해본다.

 

# 티모르 청년들

2007 DNS가 진행한 티모르 레스테 생활표준 조사자료에 따르면 19세부터 25세까지의 청년들의 진학률이 47.1%에 미치고 대학진학률은 3.7%에 불과하다. 동티모르의 대학교 진학률은 얼마 전 보도되었던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어섰다는 한국 뉴스와 비교했을 때, 동티모르와 한국의 교육수준의 차이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02년 유엔의 독립선언과 동시에 세계의 유수한 인터내셔널 ngo들은 교육 시스템의 기반을 다지는데 많은 이바지를 해왔다. 적지 않은 초등에서 고등교육기관들은 ngo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교육환경을 개선해 왔고, 2008 UNESCO자료에 따르면 2005년도 초등학교 진학률이 32%였던 반면 2007 DNS의 자료에는 취학아동이 69.7%를 기록하게 된다.

현지에서 유소년들을 만나 이야기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아니 많은 시간이 놀이라는 비언어적 활동이 대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청소년들과는 자신들의 생각을 짧게나마 들어볼 기회는 있었다. 그들의 한국에 대한 동경은 마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할 때의 그 기쁨을 맞보려는 것 같고, 말라이(MALAY: 외국인)에 대한 태도는 단순히 자신들과 더 나은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한 호기심 혹은 돈 좀 있는 친구 곁에서 덕 좀 볼 수 있느냐는 심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목적이나 의도가 어찌되었든, 이들에게는 목표가 있다. 좀 더 발전했고, 좀 더 배워서 온 이들에게 배우고픈 욕망. 그들은 굶주려있다. 마지 생선을 먹어 본적도 없는 고양이가 한번 생선 맛을 보고서 미치도록 그 비린내에 열광하는 것처럼.


p.s. 생각보다 단상의 폭이 넓어져서 제대로 수정이 안되고, 혹은 한 편에 치우져 써버린 내용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놓쳐버린 사소한 것이 있다면, 앞으로 써가면서 수정하도록 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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