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단상(斷想) 2

 

09년 6월 3일

 

제목 : 피의 속도

 

- 동티모르라고 전기가 없고, 수도가 없고,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동티모르 역시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의 구성원이다. 오해가 없기 바란다. 다만 내가 특별히 전기와 수도시설이 확충이 되지 않은 지역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다.

 

앞서 이야기 한 곳(소모초 마을)에서의 일주일간 생활을 자청하였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하루의 일과는 처음이라 그런지 가사활동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식사를 정리하고, 점심을 준비하고 점심을 정리하고, 저녁과 내일 쓸 물을 준비하고 청소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을 정리하고,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내일을 준비한다.

별다른 것이 없다고? 이런 일상적인 일과에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전기와 수도가 빠져 소비되는 시간과 노동의 양의 과히 하루 전부이다. 이런 하루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하고 불편한 것은 역시 물이었다. 깨끗한 물의 확보가 단연 중요했다.

 

30여 호의 가구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핸드펌프는 단 하나 뿐이었다. 당연히 기다리는 줄이 길다. 그래도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특별히 배려를 해주시는 마을 분들께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발적 불편?의 일주일 생활을 마치고 출발하려는 데 예정되어 있던 차편이 취소되어서 이틀을 더 머물러야 될 일이 생겼다. 당장 갈 줄 알고 빨래도 잔득 쌓아놓고, 모아 두었던 빗물과 우물물도 다 써서 바닥난 상태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마을 분들이 가장 적은 시간인 한 낮에 우물에 갔다. 마침 마을에 유일하게 차량을 가지고 계신 현지분이 세차를 하고 계신 것을 제외하고 우물은 한산했다.

 

이제 갈 줄 알았는데 못가서 인지?! 우물가에서 내 인내심은 너무나 쉽게 바닥을 들어냈다. 힘은 들어 아무리 힘껏 당겨도 물은 시원스럽게 올라오지 않았다. 옆에서 세차하시는 분도 물을 쓰셔서 온전히 내 차례만인 것도 아니라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많은 빈 통에 물이 가득 채워지지 않고, 그나마도 연속해서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가슴속에서 잠잠하고 있던 ‘답답함’의 감정이 더운 날씨에 힘입어 나를 휩싸 안았다. 나는 빨리 찾아오지 않는 내 순서와 이미 힘은 빠졌는 데 빨리 차지 않는 물 양동이.... 이 상황을 여유있게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반면 이분들은 여유있게 우리에서 양보도 하고 덤으로 미소도 지으시며 하나하나 하셨다.

 

어디선가 읽은 애기인데, 일제시대 때에 일본인들은 조센징을 ‘더럽고 게으른’ 존재로 표상했다고 한다. ‘더럽다’는 것은 당시 조선인들에게는 아직 근대적 위생관념이 없었다는 애기일 테고, ‘게으르다’는 것은 조선인들의 몸이 아직 근대적 시간관념을 체현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일 게다. 산업화가 덜 된 사회는 여전히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자연적 속도에 사로잡혀 있게 마련이다. 그런 사회의 느린 리듬에 익숙한 몸을 보면서 기계처럼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온 나는 ‘동작이 굼뜨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인들이 게으르다고 했던 조선인의 몸. 몇십 년 만에 그 몸이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자본주의적인 신체가 되었다. 누군가 티모르인들에게 여유가 과하여 게으르다고 한다면 그들은 무슨 연유로 이들에게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명명하는가! 아니 감히 그렇게 말 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내피는 저들보다 얼마나 빨리 돌길래?!?@.....

fitun hau gosta ita nia hanoin ..
2009.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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