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필리핀에 온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어느 덧 귀국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오고 슬슬 한국에 두고 온 지인들로부턴 기념품을 사오라는 사랑스러운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 여행을 온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지역 주민의 한명이 되어 살았을 뿐인데 여기 왔다 가는 것을 꼭 그런 식으로 기념할 필요가 있나 싶다. 게다가 아무리 뒤지고 뒤져도 이 곳에 대한 것을 완벽히 드러내줄만한 기념품도 못 찾겠다. 내 고향 춘천에 왔다가 욘사마 양말이나 사가는 일본인 관광객 같이 되고 싶진 않고.. 난감하기 짝이 없지만 어쨌든 내 지인들이 한국에 있을 동안 다른 공간에 있었던 티는 내고 싶기에 오늘도 기념품 리스트를 정리하고 앉아 있다. 송실장님 아시면 욕이나 한 바가지 던지실 일이다.

조악한 기념품 몇 개를 사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물론 마음 속으로 내가 보낸 시간을 정리하는 일이겠다. 많은 날들을 보냈고,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시간을 되돌아보는 일엔 일기장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후우, 불만도 참 많았고 좋았다고 낄낄 댄 적도 많았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언 따르느라 한국 가고싶다고 칭얼댄 적도 많았다. 아이들이 아떼 유림이라고 부르며 잡기에도 조심스러운 그 작고 연약한 손을 내밀었을 때 가슴이 설레어서 날아가는 글씨로 일기를 썼었다. 다양한 희노애락들이 손바닥만한 수첩에 빼곡히 적혀있다. 행복했던 그렇지 않았던 모두 값진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보낸 그 값진 시간들 중 일부를 이 글을 볼 당신과 공유하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타국에서 엄마 생각하고 있을, 너무 보고 싶은 다른 라온아띠들이 무릎치며 공감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 1. 5 13, 소리없이 다녀가신 밤 손님.

 

 한 달도 더 지난 이제와선 제법 웃음지으며 얘기할 만한 배짱이 생겼다. 심지어 그래 뭐 잘 털렸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후훗, 그러나 이건 오직 우리만 할 수 있는 얘기다. 팀원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저렇게 말 한다면 아직도 화가 날 것 같다. “뭘 안다고 그래??!!” 라고 윽박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활동이 중반에 접어들며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다. 다른 팀원들은 여전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지만 포지션이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던 나는 심란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팀 리더라는 허울좋은 명목 아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었고 자괴감 및 무력감이 겹겹이 쌓여 혼자선 마음을 추스릴 수 없는 날이 허다했다. 그래서 그 날도 그렇게 늦게까지 1층에 앉아 넋을 놓고 있다가 두시 반이 되어서야 터벅터벅 2층 침실로 올랐다. 그 시간까지 깨어 있느라 심신이 몽롱했지만 리포트를 수정하느라 1층에 놓아두었던 노트북 두 개를 2층에 올려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의 모든 날들이 들어있는 귀중품이었기에 없어지면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때문에 나는 가장 늦게 잠드는 자의 책임을 완수했다. , 불 끄고 문단속 하는 거야 당연하고 말이다.


얼마만에 잠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눈을 뜬 게 네 시 가량이었으니 한 시간 반 남짓이었던 같다. 잠결에 들은 말이라곤 도둑 맞았어.”라는 희곤이의 목소리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1층으로 뛰어내려 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내용물이 다 빠져 쭈글쭈글 해 진 지은이의 여행가방과 널부러져 있던 옷들이었고 뒤이어 어떻게 거기까지 옮겨졌는지 궁금해질 만큼 커다란 민하의 캐리어, 그리고 지하실 입구 앞에서 뒹굴던 내 캐리어. ……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미 노트북 세개를 비롯한 디카, 핸드폰, 전자사전, 지갑 등등이 다 없어졌음을 확인한 뒤였다. 참 말끔히도 털어갔다. 자기 전 내가 시간을 확인했을 때 2 37분이었는데 최대 한 시간 반 사이에 그 모든 걸 쓸어간 것이다. 도둑은 집 밖에서 불이 꺼지길 기다리고 있었을 거다. 혼자 거실에 앉아 멍하니 있던 나를, 그 사람들이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훅 끼쳤다. 침착하자고 다짐하며 일단 바로 뒷 집에 사는 스탭에게 전화를 걸었다. 머리맡에 놓아두었기에 살아 있었던 내 핸드폰이 고마웠던 순간이었다. 조금있다 스탭이 오고 두 시간쯤 지나 경찰이 왔다. 사건 현장을 처음 본 띠야(집안일을 해 주시는 아주머니)는 벌써 서너번 째 사건의 정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경찰의 지시에 따라 없어진 물건의 목록을 작성했고 그들은 도둑의 동선을 추정하기 시작했다.


….. 갑자기 이게 무슨 난리인가.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었다. 왜 우린 우리가 무사할 거라고만 생각했었는지. 여긴 안타깝게도, 남자 하나가 제 집에 가려고 뒤에서 걸어오기만 해도 변태 취급을 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그래서 경찰이 밤에 열심히 돌고 또 돌고 사람들은 몸을 사리고 사려 이런 일 한 번 터지면 세상이 뒤집히고 뉴스에 나지만 여긴 사고가 나면 그냥 그런거다.


그 날은 정말 배알이 꼴려 삐딱선을 탔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도둑으로 보였다. 내가 여기 자원봉사를 하러 왔는데, 나도 나름대로 손해를 감수하며 오기로 결심했고 덥고 습한 날씨 참아가며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그래 너희들이 우리에게 하는 건 이런 거냐, 어쩜 이럴 수가 있나..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수사 결과라고는 노트북 한 대가 동네에서 매물로 나왔는데 우리 껀 아니다는 거…. ‘용의자는 세 명인데 각기 다른 바랑가이(‘부락정도를 뜻하는 말) 사람들이다.’ 이 정도다. 주변인들은 찾을 거라고 기대 하지 말란다. 난 또 화가 났고 스탭은 말했다. “여긴 필리핀이다. 이게 필리핀의 현실이다. 우린 전쟁은 없지만 가난이 있다.”……. 그런가? 가난하면 남의 물건 훔쳐도 되는 건가? 그럼 가난한 사람들은 다 그런가? 몇 주 후 필리핀Y 사무총장과 함께 한 자리에서 얘기를 하던 도중, 이런 일이 이렇게 자주 벌어진다면 경찰들이 나서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들은 씁쓸하게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내 불행이 가장 커 보여서.. 내 나라만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이 곳의 시스템을 비난하며 주변인들에게 하나 둘 상처가 될 말들을 던지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이 지역 대학생 자원봉사자도 노트북 잃어 버렸으면 다시 사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해 사이가 틀어져버렸다. 필리핀에 사는 그들에게 난, 부자나라에서 온 사람이라 노트북 하나쯤 다시 사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이는건데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 사람들을 원망했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의 모든 기록들과 사진들 그리고 내가 노트북, 디카 등등을 가진 이후 보내왔던 2년여의 시간을 날려보냈으니까. 힘들게 돈 벌어서 산 물건들이 다 없어졌으니까. ………내 상황만 심각했으니까. 

 

얼마나 무지했는지 이제서야 느낀다. 난 이 나라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고 있지 못했다. 그저 오만했다. 내가 그토록 부정해도 난 선진국에서 온 생각 짧은 아이가 맞았다. 난 내 나라의 모순을 알기에 절대 잘 산다고 생각치도 않고 나 자체도 부자가 아닌데 왜 무조건 부자 나라에서 온 돈 많은 아이로만 치부하는 건지. 처음엔 참 불편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그럴 수 밖에 없다. 가난하면 남의 물건 훔쳐도 되는 거냐고?… 헛웃음이 날 정도로 모자른 생각이다. 난 가난을 겪어본 적이 없다. 내가 키가 작은 이유는 운동을 안 해서지 절대 못 먹어서가 아니며 단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일 해 본 적도 없고, 온갖 재난 때문에 고향 떠나 흙바닥에서 천막치고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적도 없다. 전기가 없어서, 물이 안 나와서 고생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죽었다 살아나 본 적도 없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끔찍이 아끼는 세살박이가 한 명 있는데 그 아이는 8개월 때 태풍에 화산 피해로 거의 죽을 뻔 했단다. 비록 세살이지만 나보다 산전수전을 더 많이 겪은 그 아이가 넌 우리가 겪은 것의 백분의 일도 겪어 본 것이 없지 않느냐. 이해하는 척 마라.”고 소리친다고 해도 할 말 없다. 오히려 고개만 더 수그러들 것 같다.


 나는 결국 도도한 우리 스탭으로부터 여긴 가난한 나라다, 너희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무지한 날 위해 그 불편한 현실을 토로하는 것이 그녀에게 참 힘든 일이었을텐데 나, 참 대단한 일 했다. 내 무식한 짱돌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모두에게 미안하다. 사과하고 싶다. 졸속으로 발전한 어떤 선진국에서 온 철없는 아이였거니다들 날 이렇게 생각할테지. .. 그래도 할 수 없다. 뿌린대로 거뒀다.


, 국내 훈련 기간 내내 주옥 같은 강의 듣고 고개 끄덕인 거 말짱 헛것이다. 아니, 3년 넘게 문화인류학공부한 것도 다 필요없다. 오기 전에 다짐했었다. 내가 함부로 내 뱉는 말 한마디, 무의식 중에 보이는 표정 하나, 행동 하나에 그들은 상처 입을 수 있으니 무조건 조심하자고. 그런데 난 내 물건이 없어진 것에 화가 나 얼마나 많은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마음 속으로 원망했나. 그들에게 말로써 직접적인 상처를 준 것이 아닐지라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죄를 진 것이다. 생각할수록 내가 우습다. 아직 많이 어리구나, 지은이 말대로 라온아띠는 사람되라고 보낸 것임이 틀림없다. 

 

거식증에 향수병으로 괴로워하던 그 날, 불면증까지 겹칠 것 같아 계속 그 방에서 잘 수가 없었다. 하여 우리는 남정네들 방에서 다 같이 자게 되었다. 침대를 벽 쪽으로 최대한 붙이고 지은이와 민하와 나의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았다. 게다가 누군가 또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방문에 창문까지 다 잠그고 선풍기 하나만을 튼 채로 잠을 청했다. 그래도 겁이 났다. 하필 난 문가에서 자 10분에 한 번씩 깬 데다가 더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다섯명이 함께 한 공간에서 잠을 청했던 것,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하루를 보낸 우리끼리 잠들기 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고 한다면 난철없는 걸까?^^


그 후, 모든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난 우린 갑자기 책을 읽기 시작하고 모여 앉아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껄껄대며 다 같이 웃기도 잘 웃었고 사돈의 팔촌 얘기까지 들먹거리며 쓸데 있는 얘기, 없는 얘기들을 나눴다. 마치.. 노트북 카메라 핸드폰과 팀웍을 맞바꾼 듯 하다. 그래서 우린 종종 말한다. “까짓 꺼, 잘 털렸다!!”

 

그래도 전자사전은 좀 아깝다컬러에 중국어 일본어 다 되는 거 였는데…..;; 몸에서 사리 나올 만큼이나 귀중한 깨달음 그리고 팀원들과의 돈독함이 그 값이었다면 뭐.. 알바 더 할 수 있다. 에잇!!!!!!!!

지나가다가 사람은 아파야 배운다는 명언? 이 있지요^^
가끔 우리는 자원봉사라는것이 무슨 권위처럼 느껴질때도 있지요.
누가 하라고 시킨건가요? ^^
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짓이지 ^^
비아냥 거리는 것이 아니구요.
제일 먼저 이 짓은 남보다 나를 위해 먼저 하는것이구나 라는 자기 고백이
필요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참 소중한 경험이 됐으리라 생각이 들어요.
아픈만큼,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의 큰 에너지가 되는 사건?이길 기도드립니다.

참.^^
기억은 희미해지고 없어지는것이 정상입니다.^^
기록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2009.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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