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웠고 고민했고 변해갔던, 그래서 행복했던 시간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주 질문을 받곤 한다. ‘왜 라온아띠에 지원하게 됐어요?’ ‘말레이시아는 어때요?’ ‘일은 재미있어요?’ 그 광범위한 질문에 나는 어디에서부터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항상 어렵 기만 했는데 이런 자리를 빌려 단박에 말로 풀어내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쁘다. 그 중에서도 내가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라온아띠에 지원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질문과 고민들에 관한 것이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 같아 쑥스럽고 부끄럽지만 혹여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혹은 하게 될 누군가가 있다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왜 라온아띠에 지원하게 됐어요?
라온아띠 프로그램에 지원한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에게는 외국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보는 기회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 에게는 이력서에 적어 낼 한 줄이기도 하며 또 다른 이에게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이 곳에 왔을까. 한가지로 귀결시키기 어렵지만 난 어떤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우선 요즘 흔히들 친구들이 떠나는 영미문화권이 아닌 (정말 관심 없던, 한번도 소속감을 가져보지 못한 그 곳) 아시아에 살아보는 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른 여타의 봉사활동 프로그램과는 달라 보였던 ‘아시아적 감수성을 지닌 청년 지도자를 양성한다’ ‘현지인들의 주인의식과 상호책임의식을 제고하는 참여형, 지역 밀착형 개발협력 모델을 구축한다’ 는 이 멋드러진 문구가 내 관심을 끌었다. 뭐랄까. 책으로만 배운 그래서 부족함을 느꼈던 ‘이해’ ‘연대’ ‘대안’ ‘지역’ ‘청년’ 이런 활자들이 라온아띠를 통해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힘
그런 내게 1개월간의 국내 훈련은 무엇보다 더욱 재미있고 신났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지역 공동체들을 방문하고 국제개발에 대해 강의를 듣기도 했으며 그 중 2주 동안은 지방 소도시로 내려가 그곳에 뿌리내리며 지역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조직들을 만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하는 일에 참여해보았다. 세상을 조금씩 움직여나가고 변화시키는 것이 어떤 한 큰 집단이 아닌 이런 작은 힘들이 모인 결과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또 우리는 국내 훈련을 하는 동안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곤 했었는데 그러면서 얻는 것이 많았다. 팀원들 중 몇몇에게는 그곳에서 배우고 확인하는 것들이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의식이고 생소한 개념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점 덕분에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서로 다른 지역, 전공, 나이, 성별이라는 여러 요소가 겹치니 우리의 이야기는 날로 풍성해졌고 앞으로 5개월을 함께할 팀원들을 알아가는 데도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국내 훈련을 마치고 우리는 한 달 간의 준비기간을 가졌다. 팀원들과 수시로 회의를 하면서 활동계획을 세우고 준비물을 점검했으며 현지YMCA와 연락을 취해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해 나갔다. 사무국에서는 우리에게 ‘이 시간을 잘 보내야 앞으로 활동도 원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당부하곤 했었는데 그 말은 현지에 와서 더욱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준비물을 체크하는 것뿐만 아니라 팀원들간의 의사소통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일과를 마친 여유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5명이 함께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등 사소한 부분까지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오는 것은 5개월을 살아가는데 정말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친구, 차이를 이해하는 법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많이 부족한 준비였는데도 우리는 뭐가 그리 기대되고 좋았는지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 말레이시아로 떠나왔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KL YMCA- Bethany Home- Penang YMCA 크게 이렇게 세 곳을 옮겨 다니며 활동하는데 그 중 첫 번째로 머물렀던 KL YMCA에서 우리는 말레이어와 수화를 익히는 등 갖가지 Introduction을 하며 한 달을 보냈다. 그 곳에서 내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수화를 배우는 것이었는데 YMCA staff인 deaf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면서 자연스레 수화 실력이 늘고 그들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사실 내 수화 실력이 완벽한 의사전달을 할 만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몸짓과 표정을 십분 발휘해서 그들과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재미있고 새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곳에서 친한 친구를 사귀었고 또 여러 deaf들로부터 과분한 관심과 도움을 받았다. 그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나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KL YMCA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그 곳 사람들과도 모두 친해질 무렵 우리는 Perak에 있는Bethany Home으로 활동 장소를 옮겼다. Bethany Home은 정신지체 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시설인데 우리가 그 곳에서 하게 된 일은 노래, 춤, 미술, 과학, 요리 수업 진행과 선생님들을 보조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조금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데 처음에 나는 정신지체 아동들을 만나는 것이 불편했다.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큰 학생들이 달려올 때는 무언가 무서워 흠칫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더러운 손으로 나를 붙잡으려고 할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당황하기도 했었다. 동시에 나를 더욱 힘들게 했었던 것은 ‘이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 잘 해내야 한다’는 어떤 강박관념이었다. 다행히 이런 고민들을 팀원들과 나누고 또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도 한층 여유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도 훨씬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두 달 동안 내가 Bethany Home에서 얻은 것은 요리를 잘 가르치는 방법을 터득하거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미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곳에서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 그래서 익숙하지 않았고 언제나 힐끔힐끔 경계의 눈초리를 던졌던 그들을 이제는 함께 했던 나의 아이들로 친구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고 차이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고민, 더 깊고 풍성한 사람으로
돌이켜보면 지난 3개월은 나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였고 매일이 새로운 배움의 시간들이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라는 공간에서 4명의 팀원들과 이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어울리는 일은 아마 라온아띠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활동지인 Penang YMCA에 도착했고 이 곳에서 약 두 달간을 남겨 놓고 있는 지금 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까지 나는 잘 해왔는지 내가 한 일들이 이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닌지 부터 시작해서 이들이 보기에 그저 내가 휴가를 즐기러 온 이방인처럼 보이지는 않을지, 내가 이곳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돌아가면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등등 여러가지 고민이 드는 까닭이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고민들을 잘 풀어나가는 것이다. 쉽지 않은 고민들이지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방향에서 이 고민들이 해결되기를 그리고 그것이 나를 더 깊고 풍성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래본다. 이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서는 이 고민이 해결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