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에세이
난 영화장르 중, 청춘영화나 성장영화를 좋아한다. 주인공이 어떤 일을 계기로 성장하거나 성숙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때론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영화의 판타지는 현실에선 경험하기 힘든 일임을 안다. 현실에서 개인의 성장과 성숙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기에.
태국으로 떠나오기 전, 5개월 뒤 나의 모습이 많이 변할 것이란 기대는 사실 하지 않았다. 5개월이란 시간은 한 사람이 변하기엔 매우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기 전 나의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역시나 드라마틱하게 무언가 변하진 않은 것 같다. 다만, 직접 경험하고 안하고의 차이에서 오는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많이 부딪혔고, 또 그만큼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곳에 사는 동안 마냥 행복하진 않았다. 오히려 참고 견디며 끝끝내는 버티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그저, ‘젊은 시절 해외봉사하며 좋은 경험했어요~’라는 보기 좋은 말로 포장하기엔 이 시간은 너무 많은걸 담고 있다. 활동하면서 만만치 않은 상황에 부딪혀 데이기도 했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가 버겁기도 했다.
물론, 힘에 부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의 사람들과 행복했던 추억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이 되어왔습니다~’식의 추억담으로 아름답게 결론 짓는 것도 양심에 찔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라는 말을 함부로 못쓰겠고, 무엇이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만났던 이곳 사람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했을까? ‘이해’라는 말보단 있는 그 자체로 존중한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들 속에서 어울려 지내다 조용히 나오는 것. 국내훈련 때 들었던 이 말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결국 우리는 떠나야 할 사람들이다. 그 잠시 동안 대단한 것을 이루려 혹은 무엇을 바꾸려 하지도 말고, 그들의 삶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우리가 잠시 머문 이곳에서 그들은 수십년, 수백년의 삶을 이어왔으며 우리가 떠난 뒤에도 그러할 것이므로.
활동을 하며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정리된 답변보단 여전히 많은 고민으로 혼란스럽다. 활동에 대한 성찰과 의미해석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 그리고 가슴에 충분히 담아두지 못한 지난 날에 대한 아쉬움이 뒤따른다.
이제 열흘 뒤면 태국을 떠난다. 그동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주는 것 없이, 넘치게 받은 기억밖에 없다. 무엇을 잘 해냈다는 성취감∙뿌듯함 같은 자기만족 보단, 미안함이 앞선다. 민폐나 끼치진 않았을까. 혹여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거나, 맘 상하게 하진 않았을까…하는 것들. 그동안의 생활이나 느낌이 정리돼서 명확해지기 보단, 오히려 싱숭생숭하다.
아마 이 고민과 생각들은 한국에서도 이어질 것이다. 현지 활동이 끝났다고, 내 삶 역시 땡!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 한꺼번에 많은 걸 깨닫고, 급 성숙한다는 영화 속 환상은 이곳에 없다. 대신, 고민과 깨달음 이 지난한 과정의 반복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