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나는 ‘Super man’이 되기보단 ‘Raonatti’가 되고 싶다.


이제는 짐을 싸야 할 시기이다. 단지, 물질적인 것들을 떠나서 나의 사고와 행동 또한 나 스스로가 정리를 해봐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 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느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자문자답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정답은 없을지언정.

찰나같이 지나간 5개월의 모든 순간들은 반짝이는 기억의 조각이 되어 하나하나가 뇌리 속에 박혀있다. 일일이 왈가불가 하며 모든 기억들을 들춰낼 순 없지만, 꼭 되새겨 보고 싶은 소중한 기억들은 분명히 있기에 다시금 이렇게 글로써 되짚어보고자 한다.

처음 막 필리핀에 발을 내디뎠던 3월. 그 당시 나와 우리 팀은 엄청난 열정과 패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곳에서 과연 어떠한 프로젝트를 기획하여야지만 산뜻한 변화의 바람을 불어낼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했고, 우리는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다소 건방진 의무감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지만 그 당시 나는 확실히 그랬다. 마치 지구를 구하겠다는 바보스런 슈퍼맨인 양.

지역사회 깊숙이 침투한 4월.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됨과 동시에 많은 고민과 숙제가 함께 뒤따랐다. 내가 꿈꾸던 이상은 현실의 두터운 벽에 부딪혔고, 열정만으로 덤볐던 나는 그 험한 산마루를 뛰어 넘을 수가 없었다. ‘라온아띠’라는 명찰 하나를 달았다고 해서 결코 슈퍼맨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허울 좋게 그 흉내는 낼 수 있을 지라도.

변화와 희망의 빛줄기를 보았던 5월. Aetas 지역의 워크캠프와 Aurora 지역에서의 C.O사업을 지켜보면서 -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지켜보면서 - 그 동안 풀이 죽어있던 우리는 희망의 불꽃을 보았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우리의 도전이 시작된 6,7월. 나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며, 위대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기에 당찬 포부에 걸맞은 웅장한 프로젝트를 기획, 실행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동안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은 충분히 많은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라면 더 많은 활동을 즐겁고 역동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것은 맞았다. 그들과 함께 팀(Raonatti of Nueva Ecija)을 조직하여 세계 환경의 날을 맞이해 350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며 – 무엇보다도 모두가 즐기면서 했기에 적어도 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며 – 우리들이 꾸미고 만들어 나갈 콘서트 또한 기획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이 친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고로 나는 지금도 다이나믹의 연장선에 서있다. 물론, 모든 것을 즐기며.

지난 5개월간 정말 많은 경험을 했고, 정말 소중한 것들을 배웠다. 허나 누군가가 내게 “라온아띠 활동은 어땠니?”라고 묻는 다면 나는 절대 그리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정말 즐거웠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또 다시 “넌 일하러 간 거니? 놀려고 간 거니?” 라며 딴죽 걸듯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럼 난 과감히 “내 친구들과 놀다가 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라고 당돌히 말할 것이다.

그렇다. 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뛰어난 기술도 없다. 더구나 한 낯선 이방인이자, 아주 잠시 필리핀에 정착한 어린 나그네이기도 하다. 반 년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필리피노의 가면을 만들어내고 필리피노인 체 연극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 이 지역의 사람이 되어 이 곳의 문화와 환경에 완벽히 적응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기에 나의 노력, 아니 우리 팀의 노력만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 일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러한 것들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많은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겁고, 우리는 이미 ‘좋은 친구들’이란 것이다. ‘라온아띠’의 의미가 말해주듯이 우리가 좋은 친구들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하며, 나 스스로도 이 활동에 대해 당당히 의미를 불어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좋은 친구들이 ‘영원한 친구들’이 되었으면 하는 작지만 서도 위대한 소망을 꿈꾼다. 단순히 활동이 종료됨과 동시에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요컨대, 지난 반 년의 시간을 내 나름대로 정의 내려본다면 ‘비록 훌륭하진 못했을지라도 행복했던 아름다운 순간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에도 영원히 지속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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