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야원 개 한 마리가 바닥을 훓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나를 힐끗 보고, 한 번 짖고, 다시 먹을 무언가를 찾아 언덕 너머로 총총 간다. 집 앞 진흙탕에서는 돼지가 흙에 코를 묻고 헤집는다. 한시도 바닥에서 코를 떼지 않는다. 역시 먹을 거리. 개보다 살은 쪘지만, 그래도 날렵한 몸매이다.
 개와 돼지 그리고 닭이 거리 여기저기, 집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풍경은 여기 로뚜뚜에서는 일상이다. 군데군데 큰 길목에 가축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대나무로 간이 울타리와 문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말라빠진 개와 날렵한 돼지는 나무 틈 사이로 자유스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닌다. 돼지가 어떻게 저리도 유연할까 놀라울 뿐이다.
 물론 닭과 돼지가 거리를 활보하는 풍경은 시골 마을 로뚜뚜만의 특징은 아니다. 수도인 딜리에서도, 동쪽의 도시 로스팔로스에서도, 그리고 사메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동티모르 북부의 딜리부터 시작되는 사원하게 뻗은 해변 도로에서도 볼 수 있다. 운전자는 염소와 돼지, 소의 갑작스런 출현에 항상 대비해야 하고, 차에 놀라 도로에서 갈팡질팡하는 병아리가 정신차리고 길가로 피신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주인이 어떻게 가축들을 관리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금방 그 의문은 풀렸다. 해질녘 내가 머무는 집 건너편 둔덕에 사는 아이가 크게 휫바람을 부니 그 집의 돼지들이 쏜살같이 귀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둔한 소의 궁둥이에는 주인을 나타내는 표시 따위가 칠해져 있다.
 몇 번 가축 방목보다 축사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모두 외부인으로부터이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정부와 NGO 등에서는 축사 활용을 장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목이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그에 걸맞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방목은 전통적 방법으로써 익숙하다. 축사를 새로이 하는 것보다 위험이 적다. 그리고 대부분의 농촌에서는 축사 사육의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두번째의 이유도 경제적인 측면인데, 사료를 구입할 돈과 노력을 굳이 기울이지 않더라도 가축들이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이 거리에 있다. 물론 최대의 효과를 얻진 못할 테지만, 가축이 굶어죽는 일은 매우 드물다. 셋째로, 축사 사육은 충분한 물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가축의 분비물을 처리해야 한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이 나뉘는 기후의 특성으로 인해 티모르는 물이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차이를 인식하는 것은 쉽다. 한국인이 돼지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단번에 '다르구나'며 알 수 있다. 차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해는 시간이 필요하다. 차이는 표면적인 모습이지만 이해는 그 밑의 더 두터운 부분을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는 충분한 관심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도 돼지는 먹을 거리를 찾아 앞집 마당 나무 틈 사이로 날렵히 뛰어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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