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 GOD BLESS YOU

 
요즘 필리핀은 바쁘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 종과 전구를 달고 나무를 잘라 트리를 만든다. 그래서인지 시골 아순시온에서도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전구들이 반짝이고 지붕 끝엔 주렁주렁 금빛종들이 딸랑이고 병원에는 입원실마다 문앞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찍찍이 부직포로 앙증맞게 붙어있다.




우리나라에선 그 닥 대수롭지 않은 (커플들만 느낀다는)크리스마스를 온 국민이 벌써부터 왠 오버인가 싶지만, 카톨릭이 전체 국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독실한 기독교 국가임을 생각하자 조금 수긍이 간다.

라온아띠 면접을 봤을 때, 왜 태국에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종교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이 결국 아시아의 평화에도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기독교 모태 신앙에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는 생각해 본 적도, 직접 겪어본 적도 없었다. 불교 국가인 태국에 가서 나의 종교와 다른 종교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느끼고 배우고 오겠다.-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의 예상과는 달리 불교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독실한 기독교 국가, 필리핀에 오게 되었지만, 나는 여기서도 배운 게 참 많다. 일단 많은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선(물론 메이저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가 있지만), 무교인에게도 너그럽다. 종교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하나의 선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당연히 첫 만남에서 종교를 물어보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나 필리핀 사람들은 만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What is your religion?" 이다. 기독교라고 대답하면 또 그 안에서도 카톨릭이냐 개신교냐, 개신교라고 대답하면 또 무슨 교파냐며 집요하리만큼 깊게 파고든다.

“저...그냥 동네에 있는 교회 다니는데요” 초기에는 머리만 긁적긁적 하다가 이젠 “저는 크리스천 프로테스탄이고 그 중 밥티스트 교파에요” 라고 대답하는 게 결국 훨씬 편하다는 걸 알았다. 필리핀에선 아침에 출근하기 전 차안, 일과를 시작하기 전, 학교 수업 전, 마트에서도 성경 구절이 나오고 기도를 한다. 국가 곳곳에 배여 있는 기독교의 냄새 영향인지 지혜는 이곳에 와서 매일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서 주님과 함께하고 있다.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신앙이 조금 깊어졌는지 한국에선 아빠가 숟가락 드시자마자 콧김 뿜으며 돌진했던 밥상 앞에서도 이젠 주린 배 움켜잡고 기도를 한다. 면접 볼 때는 아시아 종교의 다양성과 공존 가능성을 배울꺼예요! 해놓고선 기존의 신앙이 깊어져 가고 있는 이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리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곳 역시 종교 문제가 평화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카톨릭의 시작을 말하자면, 1521년 3월 16일, 포르투칼인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지금의 세부 섬에 도착해서 섬의 원주민들을 천주교로 개종시켰다. 곧이어 카톨릭으로 개종한 원주민들에게 스페인의 무력힘을 과시하면서 필리핀을 식민지화 한다. 지금 필리핀에 짙게 남아 있는 카톨릭의 영향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자취이다. 문제는 이 때, 스페인의 통치 기간 중에도 민다나오와 술루열도의 강력한 무슬림들은 개종도 하지 않고 정복도 당하지 않았는데, 그 무슬림들이 바로, 현재 민다나오 섬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있는 주범이다.

그들은 필리핀에서 민다나오 섬을 독립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무슬림끼리만 모여 살 수 있도록 영토를 내어달라고 요구한다. 처음 라온아띠 국가 중 우리 팀이 스리랑카 다음으로 위험하다고 했던 이유도 바로 무슬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슬림이 이렇게 반발하는 데에는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보다 그동안의 필리핀 역사와 정치 문제와 맞물린 결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와 불교 대신 필리핀 안에서 이슬람과 카톨릭의 문제를 던져준 라온아띠.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그리고 풀어야 할 숙제 하나가 생긴 기분이다.
오늘 팀 회의 시간엔 언니랑 지혜랑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얼마전까지 우리의 관심사는 ‘다국적 기업의 침투’ 였는데, 다국적 기업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접해 있는지는 알면 알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주제는 다음에 자세히 하기로 한다.


여담으로,

11월 둘째 주 일요일 ‘THANKS GIVING DAY CELEBRATION(추수감사절)’ 행사가 열렸다. joy네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 따라갔다가 우연히 들은 ‘STILL' 찬송가가 너무 좋아 배우고 싶다고 말했더니 조이가 가사를 알려주며 “ 언제 한번 우리 교회에서 이 노래 부를래?” 라고 희미한 바람결에 흘러가듯 말하길래 “응응 그러지 뭐” 라며 나 또한 가볍게 대답한 게 화근이었다.

추수감사절 전날, 밴드랑 리허설을 하라고 갑자기 연락이 왔다. 일이 커져도 너무 커졌다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벌써부터 부끄러움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저녁이 되자 추수감사절 행사가 시작되었고 한 서너시간 동안 찬송가를 부르고 춤을 췄다. 각 교회의 밴드들이 다 모여서 공연을 했다. 다들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좀 노셨는지 하나같이 노래를 잘해서 기가 팍 죽었다. 그래, 까짓거 일단 지르고 나중에 울자. 밴드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고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그랬는지 못 부른 노래에도 힘껏 호응해 주셨다. 박수를 쳐주시길래 잠깐, 아주 잠깐, 난 우리가 정말 잘 불렀나? 하고 뿌듯했는데, 뒤를 보니 밴드가 셋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끅끅 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 별로였구나, 미안.





 추수감사절 행사가 열리고 있는 교회 앞에서 찰칵.




토요일 밤 이미 추수감사절 행사때 한번 노래를 불렀지만, 일요일 예배때
또 불러달라는 앵콜 요청이 들어와 거의 울면서 한번 더 부르고 있는 중.





추수감사절 행사로 점심때, 교회 아이들에게 페이스 페인팅과 풍선아트를 했다.
그림에 탤런트가 없는 나는 페이스페인팅에서 살짝 빠지고, 풍선으로 개를 만들었다.
비율을 못 맞춰서 꼬리가 매우 길다 .



 지혜와 나의 노래를 듣고 끅끅 거리며 웃음을 참은 그 밴드. 갈색 옷을 제외한 세명이
 형제이다. 유키 알란 마키. 훈훈한 3형제라고 좋아했었는데 상처받았다 흑.
 하지만 우린 매주 그 교회에 갈 생각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왼쪽부터, 웃는 게 권지용을 닮은 첫째 유키, 웃는 게 오바마를 닮은 막내 마키(잘생겨또꺄)
 웃는 게 저승사자를 닮은 둘째 알란. 초영언니가 턱수염이 염소같다고 놀렸다ㅋㅋ 갈색옷
 입으신 분은 이미 결혼을 하셨다하니 과감히 패스-)   



윤혜령 지은이 머리 예쁘네~
반팔과 크리스마스라...좀 어색하네~
2008.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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