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익숙한 것들에 대한 재발견

 

흔히 사람들은 ‘크레파스’라 하면 초등학생들이나 쓰는 수준 낮은 미술용 물감 정도로 알고 있다. 아직 물감을 쓰기에는 손놀림이 섬세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미술 도구쯤으로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 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땐 ‘크레파스’로 색칠하는 건 10살이 된 내게 용납할 수 없는 창피한 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카데믹 올림픽의 아순시온 YMCA지역 예선 현장. 날도 무덥고 해서인지 스텝들은 나를 그리기 대회 현장에 있을 것을 권했다. 노래대회나 퀴즈 대회는 야외무대에서 펼쳐지고 있어서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그 세심한 배려에 감동받으며 대회장인 아순시온 센트럴 하이스쿨의 어느 한 교실로 들어갔다. 미술 대회장에는 7명의 아이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해남 촌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1년에 한 번씩 해남에서 제일 큰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학예회 같은 대회에 조소와 사물놀이로 매년 출전했던 경력이 있던 나는 그 대회장에서 가을빛이 가득했던 시골의 대회장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 졌다.

 





이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 아이들의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기 위해 촬영을 시작했는데 혹시나 방해가 될까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촬영 중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의 책상엔 붓이 없었다. 물통도 없다. 이정도 대회쯤 나오는 친구들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을 영어가 써진 물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없다. ‘어라... 대체 뭘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거지?’ 생각하는 찰나, 어떤 아이가 주섬주섬 크레파스를 꺼냈다! 크레파스! 크레파스! 크레파스! 그렇다 크레파스!를 꺼냈다. 햇빛에 그을릴 대로 그을려진 까만 손을 가지진 남학생이, 그것도 나보다 훨~씬 크고 긴 손가락을 가진 남학생이 크레파스를 꺼냈다. 그리고 그 크레파스라면 우리 유치원 아이들이 수학 교재 색칠할 때 쓰던 바로 그 제품이다. ‘하하하’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유치하고 시시해서가 아니라 그간 이런 대회에 나오면 물감으로만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참 좁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실을 한바퀴 돌며 촬영을 한 뒤 다른 대회장도 살피며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잠시 그 그림대회장에서 자리를 비웠다. 한 1시간 정도나 지났었을까? 다른 경쟁의 장들을 카메라에 담고 조금을 지쳐 그림대회장으로 돌아왔다. ‘아이들 그림을 얼마나 완성됐을까’ 하는 마음에 다시 대회장을 한 바퀴 빙 돌아봤다. 그리고 나는 곧 미소를 동반한 충격에 휩싸였다.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작품들이 완성되고 있었다. 크레파스로 그라데이션 효과를 주다니!

 







그날 크레파스는 내게 익숙한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주 가끔씩 익숙한 것들에게서 익숙하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우와 이런 면이 다 있었어?’ 하며 신기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서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배신감처럼. 물론 익숙함에 젖어 사물을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애초에 배제한 본인의 잘못이 크지만. 어쨌든 크레파스는 이제 내게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물건이 되었다. 나는 크레파스의 사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필리핀에 와서 ‘익숙한 것’들을 가끔 만났다. 이제부터 내가 만난 몇 가지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한다.

 

헌 옷 수거함을 필리핀의 시골마을에서 만나다. 


아순시온에는 금요일마다 7일 장이 선다. 작고 아담한 시골 장터는 금요일이 되면 북적북적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정겨운 광경이 펼쳐진다. 그날은 아이들 장난감부터, 각종 해산물을 파는 사람도 나오고, 옷을 산처럼 쌓아 놓고 파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필리핀에 도착한 초창기에 함께 일하는 스텝 한 명이 그 옷 가게를 가리키며

“ It is 오까이오까이 ” 라고 말했다.

“ What's 오까이오까이?” 라고 되묻자,

“ 오까이오까이 is the secondhand products. Maybe that cloths came from Korea."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옷들이 아무리 봐도 새것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았다.

헌 옷 수거함속의 옷을 필리핀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아파트 단지 눈에 띄는 듯 띄지 않는 한 구석, 촘촘한 빌라들 사이 어딘가,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헌 옷 수거함. 나는 살면서 그 헌 옷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단지 막연히 어느 고아원으로 보내지지 않을까 생각했었을 뿐. 또 TV에서 그것들이 중국이나 동남아 같은 곳으로 수출된다고 했던 것도 같고. 어쨌든 그 문제는 내 관심 밖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 헌 옷 수거함에나 들어있었을 옷은 낮선 땅 필리핀에서 만났고 이것은 이제 내게 꽤 흥미로운 주제가 되었다.

 

현물을 사고파는 시장에는 공장에서 갓 생산된 재화만이 유통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손에서 유용하게 쓰이다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우 귀중하게 쓰일 보물일 수도 있다. 미국의 절약정신, 이웃 간의 정에 관해 이야기 하던 중학교 영어 교과서 본문에 나왔던 ‘garage sale(차고세일)’의 내용처럼. 그러고 보니 ‘오까이 오까이’ 옷 가게는 ‘garage sale’이 집 차고 앞에서 국가 간으로 확대된 재미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부의 비지니스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지만. 하지만 이런 ‘garage sale’이 국가 간에 유통되는 과정을 가지기 위해서는 불가피 하게 소모되어야 할 에너지(상품의 관리 및 선별, 자금, 유통과정의 노동 등)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나쁘게 봐야할 필요도 없고 좋게 봐야 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우리나라가 헌옷을 팔게 된 건 지긋지긋한 IMF때라고 한다. ‘헌 옷 수출’은 ‘외화 벌어들이기’의 한 수단이었다. 우리는 달러가 필요했고, 헌 옷은 필요 없었다. 그리고 필리핀은 옷이 필요했지만 새 옷은 비쌌고 질 좋고 값싼 중고 옷이라면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헌 옷 수출’을 시작되었고 필리핀의 ‘헌 옷 수입’은 시작되었다. 참 괜찮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원리의 한 예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필요한 외화를 벌었고, 필리핀 사람들은 낯설어 더 멋져 보이는 한글이 프린트된 티셔츠나 가방을 싼 값에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최근 한국에서 요즘 세상에 옷이 떨어져서 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옷이 닳기 전에 싫증나고 오래 돼서 버린다. 그래서 헌 옷을 수거하는 업자들은 이런 옷들을 1kg당 300~500원을 받고 동남아로 그 옷들을 수출해 꽤 짭짤한 수입을 내고 있다고 한다. 또 강남과 같은 고소득층 밀집 지역에서는 헌 옷 수거함이나 재활용품 수거함이 준 명품제품의 전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쯤 되니 재활용품 수거업자들 사이에서 ‘물 좋은’ 지역 쟁탈전도 벌어진다고 한다. 어쨌든 모아진 재활용품을 수거업자에게 넘기고 받는 수익금은 지역 부녀회같은 단체에서 관리하여 동네 행사나, 아파트 도서관 만들기 같은 주민들을 위한 공익사업에 사용된다고 하니 옷 쓰레기통에 안 버리고 수거함에 넣는 수고를 한 보람이 있다. 게다가 그 옷들이 배 타고 이웃나라에 건너가 가치를 알아주는 새 주인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한국과 필리핀. 대체 어떤 고리가 연결된 관계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그리고 시골 장터의 ‘오까이 오까이’ 옷 가게를 통해 고리 한 개를 찾은 것 같다.




첨부

아카데믹 올림픽 에서 찍은 사진 몇 개 올립니다.






저희 잘 살고 있어요~
이제 딱 50일 남았네요^^
한국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오휘경 와- 맨 아래 스텝들과 찍은 사진 넘 멋져!
2008. 12. 4.
peace 아이 가방이 뭔가 한참보고 나서야 학원가방인걸 알았다능;;;ㅋㅋ
2008.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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