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 North & South

 



 

그저께 있었던 YMCA 보드 멤버 미팅에서, 이번에 새롭게 보드 멤버에 당선된 부자 아저씨 한 분이 우리 셋에게 말을 걸어왔다. 대뜸 자기는 North Korea 와 South Korea 를 구별하는 방법을 안다고 했다. 어떻게 하냐 그랬더니 North는 못 먹어서 빼빼 마른 사람이고 South는 잘 먹어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사람이란다. 그러면서 자기의 농담에 반했는지 으하하 웃어 제끼시는데 우린 순간 굳어버렸다. 솔직히 한국의 분단된 현실에 대한 농담, 처음은 아니다. 그렇지만 들을 때마다 상처가 된다. 아마도 저 부자 아저씨는 우리 덩치를 보고 자신의 구별법에 더 확신을 얻은 것 같았다. 그러 길래 이런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진작에 다이어트를 했어야 했는데 젠장.



한국에 있을 땐 분단된 현실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분단이 되어있지만, 선 하나만 제외하고는 여전히 우린 붙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언젠가 통일이 될 거고 지금은 잠시 집안 사정으로 각방 쓴 정도라 생각했으니 북한을 다른 나라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 곳의 사람들은 KOREA 라고 말을 하면 당연스레 North or South를 묻는다.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웠다. 마치 우리 집안의 비밀을 들킨 것 같은 기분 -당연히 모두 아는 사실일텐데 왜 그동안 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모를 거라 생각했을까- 나의 편협한 사고가또 한번 발견되었다. 나는 우리가 남/북한으로 나뉜 사실을 우리와 일본, 중국, 그리고 미국만 알거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무식이 죄라는 말밖에는....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이 이웃집 사정 물어보듯 아무렇지 않게 North or South? 할 때마다, ‘뭐야, 우리 나뉜 거 알고 있었어?’, ‘그냥 korea 라니까 왜 굳이 남, 북을 물어. 알아서 뭐 할껀데.’ 기분이 괜시리 나빠졌다 슬퍼졌다 우울해졌다 하다가 결국 잔뜩 비뚤어진 마음을 담아 “South.” 라고 대답하고 만다.




한국이 왜 분단이 되었을까.
그 원인배경과 과정을 우리보고 말하라고 한다면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 시간에 배웠던 교과서적인 이유들을 일어난 순서대로 줄줄 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하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건지.



 

어렷을 때 여름 휴가로 아빠랑 엄마랑-지아는 태어나기 전이니까 아마 내가 일곱살 때 쯤- 광주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뽈뽈뽈 차를 몰고 간적이 있다. (아! 생각났다. 그때 지아는 엄마 뱃속에 있었는데 그리고 나서 한달 후에 지아가 태어났다)
아빠는 내가 “우리 어디로 놀러가?” 라는 말에 항상 “ 아빠도 몰라. 바퀴 굴러 가는데로 갈꺼야.” 하시며 웃으셨는데 그때는 정말로 만삭이 된 엄마를 데리고 예고도 없이 바퀴가 굴러갈 수 있는 데까지 가버린 것이다.




푸른 동해바다를 옆에 끼고 달리고 달려서 강릉을 찍고 양양, 속초, 뭐 이런 지명의 곳들을 지났던 것 같다. 그리고 하루 걸려 도착한 통일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불과 몇 안 떨어진 거리에 있는 북한도 보았다. 그리고 한 강당 같은 곳에서 북한과 관련된 영상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영상이 끝나자 다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을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난 그때 의심스러웠다. 정말? 정말로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야? 북한도 그걸 원하긴 한대? 나의 미운 일곱 살 스러운 질문에 엄마는 웃으시며 북한도 통일을 정말로 원한다고, 그렇지만 여러 상황 때문에 잠시 통일을 못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로 커가면서 북한도 남한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정치적 · 군사적으로 보여지는 북한의 모습은 우리의 염원과 점점 멀어져가는 모습 뿐이었다. 잘해주면 튕기고, 못해주면 그대로 등 돌려버리는 북한을 보며 원망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밤새 앞으로 말 한마디도 안 할거라고 중얼거려봤자 자고 나서 아침이 밝으면 금새 마음 풀려버리고 애틋해지는 가족처럼, 딱 그 마음이다. 어제의 뭉쳐진 원망도 오늘이 되면 귤 알갱이 부서지듯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차마 한낱 글자로는 표현 못 할 형용할 수 없는 우리네의 마음이,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도, 느끼지도, 이해는 더더욱 못할 필리핀 사람의 한낱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에 함부로 사용되어지는 것이 불쾌하다.

 

 

항상 KOREA! KOREA! 하던 사람들이 북한 얘기가 나오면 눈을 가늘게 뜨며 슬슬 무시하기 시작하는 데, 그들은 아마도 North를, 그리고 한국의 분단된 현실은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우리보다 잘살면 뭐해 분단되었잖아’ 하는 그들의 표정을 접할때의 심정은 뭐라 말할 수 없다. 무슬림한테 맨날 테러당하는 주제에 누가 누구를 동정한단 말이냐아!!!!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지만 이미 속상해진 마음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인종 차별도 아니었고, 경제 차별도 아니었다. 단지 분단되었다는, 그 이유 뿐이었다. 이제는 필리핀 사람들이 김정일을 얘기하면서 욕을 하면 그것마저도 기분이 나쁘다. 대치 되어있다고 해서 내가 응, 맞아 맞아! 하면서 맞장구라도 쳐줄줄 알았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흥!! 스페인에게서 식민지를 해방시켜 준 게 미국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영웅 대하듯 하는 자존심 없는 필리핀 보단 북한이 백배 천배 더 나아!!!





눈치 없이 우리 앞에서 끊임없이 나불 나불대는 필리핀 사람들도,
그리고 잔뜩 심사가 꼬여버린 나도 구제불능들 같다. 엉엉. 
필리핀 사람들, 아니 중국,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블라블라블라- 기타 모든 나라들에게 우리의 진가를 보여주기 위해 반드시 통일을 이루고 말겠어!!  이미 본래의 인도주의적 의의는 잃어버린 나의 수틀린 이성위에 순간 어느 평화적인, 그리고 너무나도 낭만적인 한 소녀의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내려 앉았다.





“ 백석, 정지용, 박태원, 이용학, 김기림 ···· 이 문학가들은 모두 월북하거나 납북되어졌대.
고등학교 때 문학시간에 되게 좋아했던 작가들인데... 특히 백석 시인의 ‘여우난 곬족’ 을 좋아했어. 그런데 백석 시인의 시에는 평안도 사투리가 많이 쓰여서 문학 평론가들이 해석하는데 애를 많이 먹는다는 거야. 그리고 정지용 시인은 ···· ”

 


 

그래. 나도 고등학교 때 백석 시인 참 좋아했어. 당나귀도 좋아서 ‘응앙응앙’ 울 거라는 표현에 홀딱 반해버렸던 기억이 나. 세상에 ‘응앙응앙’ 이라니. 정말로 조그만 당나귀가 흰 눈밭에서 좋아서 폴짝폴짝 뛸 것만 같잖아. 오죽했으면 필리핀 올 때 영어 이름을 ‘나타샤’ 라고 하려고도 했으니까. 결국은 한낱 열매 이름인 체리가 되어버렸지만. 그리고 교과서 밑에 나온 백석 시인의 조그마한 프로필 사진에도 그대로 뻐렁쳐 버렸어. 인물이 장난 없더라구.

 



 

역시, 평양 YMCA 차기 사무총장님은 다르구나.
지혜는 원창수 팀장님이 평양 YMCA 사무총장님이 되어서 실세를 잡으시면 팀장님의 오른팔이 되었다가 언젠가 은퇴하시면, 자기가 실권을 잡고 평양 YMCA 사무총장 자리를 꿰차겠다고 했었다. 얼마 전엔 신의주 YMCA 사무총장을 하고 싶다고 해서 도대체 북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다 빼앗을 참이냐고 면박을 줬지만 쨌든, 그 이후로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언젠가 나는 꼭 북한을 위해 일을 하고 있을거야- 라고 항상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너의 가치 있는 원대한 포부들이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분단이 되어있는 북한을 위해, 그리고 하나가 될 한국을 위해, 혹은 이미 하나가 된 이후의 한국을 위해. 언젠가 반짝반짝 빛날 평양 YMCA 사무총장님이 있어서 마음이 참 든든하다.

 

 


“ 나는 지금 우리에게 어떠한 군사적, 정치적 대립이 있다 해도 불안하지 않아.”

 



그녀는 말을 이었다.

 



“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우리가 떨어져있는 시간들은...”

 



음, 그러니까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다 합쳐서,

 



“ 5000년 역사 중의 극히 일부분이니까. 먼 미래의 사람들이 한국의 역사를 쓸 땐 지금의 이 시간이 너무나 짧고 순간적이어서 어쩌면 자칫 잊고 빼먹어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슬프기도 하지만 또 영광스럽기도 해.

 



 

“ 우리는 결국 하나가 될꺼야. 언제나 그랬듯이.”

 

 



그래. 나도 언젠가 언젠가 다시 떠날 여름 휴가에서는 아빠는 부릉부릉 운전하고 나는 뒷 자리에서 편히 한숨 푸욱 깊게 자고 일어나면 바퀴가 멈춰져있는 마지막 장소가 강릉, 속초, 양양을 훨씬 더 지나 멀리 멀리 나진시의 어느 쯤 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런 날이 꼭 올거라고 믿어.














 















고두환 넌 내 오른팔 해라~
2009. 1. 10.
원팀장 지은이의 잼있는 글,,,이게 마지막인건가??
아쉽~~ㅠ.ㅠ
2009.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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