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활동 보고서




돌아본다. 아니 손짓한다. 배낭이며 캐리어며 바리바리 싸갔던 짐들만큼이나 부푼 기대와 떨림을 안고 필리핀 땅을 밟았던 세 달 전의 그날.

   쏘아 논 화살처럼 결코 잡을 수 없는 시간의 뒷모습에는 언제나 후회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거창한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해, 결코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기 위해 나는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며 치열했던가. 어리석게도, 활동의 절반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더욱 옥죄며 정해진 틀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에게 무언가 커다란 도움을 주고, 성취감과 보람을 그에 대한 급부로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자 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었는지,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은 그 웃음으로써 나를 호되게 꾸짖고 있다. 하얀 피부에 검은 뿔테 안경, 낯선 이방인의 모습에 호기심 그윽한 눈빛으로 언제나 밝게 맞아주었던 이곳 사람들의 환대 속에서도 절대 녹록하지 않았던 3개월, 나는 무엇을 보고, 듣고, 무엇을 깨달았는가? 혹은, 어떤 한계를 절감했나.

  그 시작은 열등함과 다름을 구분 짓는 것이었다  
   절대적인 경제규모에서부터 치안, 정치, 소셜 인프라 등 수치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분명 열등하다. 하지만 아직도 도로 위에는 차보다 오토바이로, 깔끔히 정돈된 상점들 보다는 길거리 가판대와 구걸 꾼들로 넘쳐나는 이곳에서 웃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런 그들을 그저 속 좋은 낙천주의자들로 치부할 수 있을까?

   행복을 고민했다
   연봉, 집 평수, 자동차 배기량, 재테크 수익률. 규격화된 수치들로 행복을 좇는 우리네들의 기준을 이들에게 들이미는 것은 그들에 대한 모욕이다. 코를 찌르는 악취 속에서의 고된 노동 뒤에도 한잔의 술과 한숨의 낮잠은 어김없이 찾아오기에, 사시사철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있어도 Tricycle을 잠시 세워두고 쉬어갈 수 있는 나무그늘이 있기에 이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내가 살아온, 아니, 흔히들 회자되는 한국인들의 삶의 기준에선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힘들었던 것도 그들을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한국에서의 나를 버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내가 Community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이전의 나는 마치 제로섬 게임의 그것처럼 잠식된다. 이런 고민들은 꽤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아직 완전히 그들을 이해하진 못했기에)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들을 바라볼 때, Korean standard를 가만히 내려놓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나서부터,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이 마치 엮인 실타래 풀리듯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다. 다르다는 것. 그렇다. 그들과 우리는 분명 달랐다. 항상 고마워 할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주어진 현실에 감사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 그들은 더 빨라야 하는 인터넷 속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들, 요동치는 주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런 그들과 함께하며 이러한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이 드넓은 세상에는 꼭 우리들과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우리들과 다르게도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우기 위해, 향수병과 몇몇 어설픔 음식을 감내하는 비싼(?) 수업료를 우리들은 지금 지불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고민
   하지만 그 이해가 통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세상을 조금은 불공평하게 만들 수 밖에 없는 문제, 빈부격차.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가끔 거짓말을 엄청 보태어 하늘과 땅 차이 라는 상용구를 사용하지만, 이곳의 빈부격차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화려한 불빛의 쇼윈도, 즐비한 상품들, Mall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혹은 뭔가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한바탕 쇼핑을 즐긴 이들에게는 Mall의 문을 나서며 주차된 차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구걸하는 소년, 소녀들이다. 하지만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심지어 화나는 것은, 이것이 마치 이곳의 문화인 양,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과연 이곳의 위정자들은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는 있을까? 아니, 이곳 사람들에게 의지는 있을까? 그저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매정한 사고로 일관해버리는 걸까? 그저 여긴 내 나라, 내가 살 곳이 아니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하지만 현지인들한테 조차 외면 받는 그들의 눈빛엔 미래는 있을까?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내성적이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내가 나 자신을 지켜본 바로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고, 말하는 것 보다는 생각하는 것, 먼저 다가가기 보다는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는 소심형이다. 정해진 일상 속에 한정된 인간관계, 술과 책에 치여 살던 한국에선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정작 머나먼 타국에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괜한 엄살일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항상 먼저 웃으며 인사하기, 가장 기본적이지만 나에겐 가장 어려운 것들이다. 언제나 밝게 웃으며 화답해주는 그들에게서 용기를 얻다가도, 때론 냉소적인 그들을 보며 한없이 움츠러든다.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의 나는 달라져 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게다가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이곳에서의 기억마저 희미해져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몸치인 나를 계속 응원해주며 2ne1의 ‘Fire’ 안무를 함께 연습하는 Valle cruz의 어머니들과, 되도록 많은 이곳의 문화를 소개해주고자 하는 Kuya morito, 때론 엄마와 같이, 누나와 같이 항상 우리들을 보살펴주는 Ate mayet, 항상 Facebook 주소를 물어보는 이곳 친구들이 있다.

나는 그냥 그렇게, 이곳의, 지금의 내 생활에 충실하고 싶다.


김우겸 이작가 멋있다
2011. 1. 10.
이동민 ㅋㅋㅋ 왜그래 우겸둥 ㅋㅋㅋ
2011.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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