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CL이 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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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혀 글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뜬금없는 플로이(서현)언니의 질문으로 갑자기 손이 간질간질 해졌다.갑자기 인터넷을 하던 언니가 우리에게~남삥(충현)오빠와 나~ 질문을 했다." CL이 뭐야 ? "마리(나)는, " 요새 나오는 2NE1 리더요. "동시에 남삥오빠가," 우리가 언청이라고 말하는 애들 중에서 입술이 갈라진 구순열(Cleft Lip) 말하는 거 아냐 ? "아,그랬었지,CL은 YG에만 있는 게 아니였어,결과적으로 플로이언니의 질문에 대한 답은 내 답이 맞았지만 :^)남삥오빠의 답을 시작 삼아 여러가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볼까 한다.▲ 치앙라이Y에 도착해 열심히 CL과 CP의 설명을 듣고 있는 중(쳠푸야, 응?)우리 태국팀이 정확히 CL과 CP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2주일 전, 비자연장을 하러 치앙라이를 거쳐 미얀마에 잠깐 발을 들여놓기 위해 치앙라이YMCA에 갔었을 때다.우리나라에서는 모두를 통틀어 흔히 '언청이'라고 말하고 정확한 명칭은 입술만 갈라진 것을 구순열(Cleft Lip), 입 천장이 갈라진 것을 구개열(Cleft Palate)로 구분한다.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흔히 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고작 TV나 신문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했어서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근데 생각보다 태국에서(특히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고 국경을 접하는 북부 태국지역)는 많은 아이들이 이런문제를 겪고 있었고, 특히 치앙라이Y 측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었다. 유전적 요인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부족내에서의 결혼이나 임신 후 충분한 영양섭취가 없었다거나)때문에 순수(?)태국 아이들 보다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할 수는 없는 소수민족 아이들이 대다수였다.수술 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했는데, 수술을 한다는 것 조차 엄두가 안나서 충분히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는 아이들도 많고 어떤 소수민족은 이런 아이들을 '저주받은'아이라고 생각해서 가족들에게 버림받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씀하셨다.이런 아이들을 위해서 치앙라이Y는 모금사업을 하고 또 연계되어있는 태국Y에서도 각 Y호텔이나 장소를 마련해 모금함을 비치해두고 있다. 이 아이들의 수술을 위해 여러 의료진 스탭들이 한 팀을 이루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한국인 의사선생님. 태국에 거주하고 계신 것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치앙라이에 오셔서 봉사를 하고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왠지 뭉클, 뿌듯 해졌다. 앞으로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정말 간단하고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에 많이 있다.가슴이 아프다.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니,뭐가 가슴이 아파?내가 많이 갖고 있으니까 나눠줘야겠다는 나의 오만함이 이런 감정을 만드나?어렵다!도와주고 싶다.그런데 난 의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도 끝도 없이 도와줄 정도로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내가 이 아이들을 위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2. 어떤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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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기대하고 이 곳에 왔는가?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는가?이 곳 캄보디아 시엠립에 온 지 어느새 3개월이 다 되었지만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인 것 같다(진부한 대답을 제외한다면). 나는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느끼고 싶어서 왔을까. 어떤 아름다움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녹아들어 앞으로의 삶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까. 어떤 아름다움이 이 곳-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동글동글하게 남게 될까.밥퍼 센터에서의 일과는 전에 기록한 바가 있다. 그 외 주요 활동은 전부 교육인데, 하나는 센터에서 월,수,금요일에 하는 오후 교육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를 비롯, 여은이와 지훈오빠는 영어를, 가영이는 미술을, 대규오빠는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5월 18일부터 새로운 텀이 시작되어 약 한달여 간의 교육을 진행 중에 있다.어쨌거나 매일 밥퍼 센터에서도 보고 교육 때에도 보니, 센터 근처에 사는 아이들과는 엄청 많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가까워짐이 언제나 행복한 시간만 선사하지는 않는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그 사람에 대해 더 큰 기대를 하게 되고 이는 자칫 오해라도 생길 경우 보다 큰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얼마전 작은 사건이 있었다. 장황하게 설명하긴 길다. 하나는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던 아이들이 갑자기 배우지 않겠다고(표면적인 이유는 '엇미은 로이(돈이 없다)'라는 것이다-배우는 것에 일종의 책임감을 갖게 하기 위해 한 텀에 1$(한국어,영어)를 지불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자선단체 소속으로서 돈에 대한 부분을 다루기는 참 힘들다-) 하며 내게 다소 무례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생각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에 난 꽤 놀랐었고 그 사건은 여태까지의 캄보디아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기억되어 있다. 또 한 사건은 다른 팀원의 돈이 도난된 사건이었다. 그리 큰 돈은 아니라 했지만 문제는 이 팀원이 가르치는 반 아이들 중 한 명(또는 몇 명)의 소행이라는 것이었다. 이 팀원 또한 이 상황에 무척 힘들어 했다. 어쩌다보니 사건은 다 돈과 관련이 있지만 우리가 실망한 것은 다름아닌 '사람'에, 그의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이 곳 사람들의 순수한 미소와 맑고 높은 하늘.. 캄보디아를 처음 알았을 때 덮였던 콩깍지(?)와 같은 이런 아름다움들은 순간 아웃오브 안중이 되어버렸다. 시선은 국경이나 언어가 아닌 '사람'과 '사람'에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면서도 '오. 이제야 좀 이 아이들과 친해진 것 같군. 이제야 내가 이 곳에 조금이나마 속한 것 같다.' 하는 오묘한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다.일상에 희노애락이 있는 한, 이들과 함께일 때에도 희노애락이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곳에서 서로를 뭉클하게 할 아름다움은 귀국하는 그 날까지 계속 찾고 또 찾겠지만, 너무 친근해서 혹은 편해서 느끼는 이 아름다움도 오랜동안 기억되지 않을까.+ <사진 이야기> △ 한국어 수업 칠판- 크마에를 이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이해한다. 하지만가르치는 사람이 힘들어진다. 때론 괜한 것을 가르쳐 학생들에게 혼란만 자아내기도 한다(오른쪽 아래..-_-;).△ 꼬마아이들은 언제나 사진찍기를 좋아한다 :)△ 5월 22일, 프놈펜 밥퍼 센터 근처 마을- 프놈펜 밥퍼센터 근처에 위치한 언동마을은시엠립의 마을보다 훨씬 더 열악한 곳이다. 보는 나 조차 마음이 좋지 않았으나아이들의 웃음은 오히려 그런 나를 위로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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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현지 생활 정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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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카뉴스 4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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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전에 올릴줄 알았던 4월호가.. 여러분의 성원....................흠..뭐 ....어찌되었건 발간되었습니다.많은 애독 부탁드리고독자기고란 좀 살려주세요. ㅜㅜ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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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한 마음으로 저녁에 집을 나섰다.물론 저녁외출은 금지 받았고 팀원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나는 이기적이게 이렇게 자주 나가서 바람을 쐰다.울적한 마음으로 길을 걷는데. 저 앞에 한 아주머니가 보인다. 물론 그 아주머니 앞에는 4-5살 정도의 아이가 안겨 있다.많이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무뚝뚝하게 동전을 드린 적이 있다.
이 모자는 우리 집 근처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많은 분중 하나다.
왜 그렇게 되셨는지 알수는 없다. 쓰나미인지 아니면 어떤 사고인지.. 아버지는 없이 이렇게 모자는 하루하루 정처 없이 떠돈다.
예전에 주말 CHILDREN'S 클럽을 하다가 짝피구를 할 마음에 배구공에 바람을 넣으러 간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 이 모자를 보고 마침 돈이 있는데 주기는 민망하여 같이 가는 YMCA댁 아이에게 돈을 전해주라고 했더니 그 아이가 나에게 이런 것은 백인이 줘야한다고 나보고 주라고 한다.
사실 돈이 중요하지 내가 주든 지가 주든 상관이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돈을 줬더니 아이가 날보고 배구공을 달라한다. 한참 당황스러워하다가 우울해 하는 아이의 얼굴을 뒤로하고 나는 매정하고 YMCA로 향했다.
이튿날인가? 그날 나는 그 모자를 보았는데 그 아이 손에는 공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그 아쉬운 소리해가며 받은 돈으로 아이를 위해 공을 사주셨나보다.
그런 모자였기에 나는 간혹 만나면 동전을 드리고 했다. 아니다 어쩌면 거만하게 주곤 했던것 같다.
뭐 여튼 어제 밤에 나가다가 그 모자를 보게 되었다.
뒤에서 그들을 보고 아.. 좀 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눈이 마주쳤다.
뻘줌한 상황을 맞이한 나는 얼어버렸고. 그 아주머니는 뭔가가 아쉬운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 표정을 보고, 나는 나의 뻘쭘함인지..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표정 때문인지
왜인지모를 기분에
손에 돈을 꽉 쥔 채 모른 척 지나쳤다.
지나치는 동시에 아 돌아서 드릴까.. 돌아가서 드릴까.. 고민을 했지만.. 나의 그 상황과 나의 우울한 기분을 핑계 삼아 뒤도 보지 않고 걸어갔다.
그 모자..... 지금 어디서 굶고 있는 건 아닌지. 어디서 자고 있는지 ...... 문득 이렇게 생각이 든다.
내가 무슨짓을 한거지.
나는 그들에게 나쁜짓을 한것 같았다. 아니 했다. 차라리 단 한번도 주지 말 것을..
그런데 그것보다 나는 나 스스로를 너무 잘못된 나쁜 길로 인도한 것같다.
나 좋을 때는 착한일. 나 기분 나쁠 때는 나쁜 일.
..후
정말 지랄을 하는구나. 싶다.
문득 나 스스로가 수치스럽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그러고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
이런 마음으로 뭘 하겠나 싶다.
아 걱정이다.
내일 만약 그 모자를 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마음으로 다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할까.
#04 반쯤 채워진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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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으로 쓴 감상임을 밝힙니다.
아직 반 밖에 지내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 저것 털어놓을 수는 없지만..개인적인 감상은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필자는 현재까지 대학생 신분으로서 몇 개의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뿌듯함과 자부심도 느껴보았고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있고 지원해서 떨어지는 쓴 맛도 보았다.
이렇듯 내가 겪은 경험도 약간 빗대어서그리고 이른 감은 있지만 라온아띠 내에 직접 참여해서 지금까지 2달 반 지내본 결과에 대한 감상을 끄적어보았다.
1. 능동적인 면
일단 라온아띠는 보통 해외봉사 프로그램과 다르다. 아예 목적자체가 다르다. 나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말을 빌리지만 보통 해외봉사(단기)프로그램은 정말 빡빡하다. 나 역시 몇 주 간의 짧은 기간 동안 한국 공연 보여주랴, 교육 노동 봉사 하랴, 마지막에 현지 문화 공연 습득하랴..그 와중에 주말엔 관광 가랴 눈 코 뜰새가 없었다. 한 마디로 보여주는 "쇼"가 많고 우리가 볼 "쇼"도 많다.
지금까지 짜여진 틀 안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했지만 라온아띠는 그 틀조차도 헐겁고 또 직접 만들기까지 해야 한다. 이 곳 라온아띠 베트남 팀으로서 지내는 나는 좀 여유롭다. 국내 교육때 듣긴 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물론 각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첫달은 여유로운 환경이 오히려 답답하고, YMCA에서 왜 우릴 써주지 않는지 속상한 기분까지 들었다. 2달 반이 되는 지금 난 어떻게든 활동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현지 NGO 단체를 알게 되어서 메일을 보내 보고, Y 관련 기관을 한 번 더 방문해보고, 이 곳 대학생들과 친분 유지에 더 신경쓰고....
솔직히 아직까지 스스로 활동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하지만 라온아띠의 목적이 여기서 하는 활동보다 내가 활동을 만들고 또 활동을 만들기 위해 이 곳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즉 능동적으로 바꿔가는 프로그램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정의해 보고 싶다.
* 2009 3월달에 팀원과 통일궁 관람한 날
2. 봉사자라는 신분?!
보통 봉사활동을 나가서 환대를 받으면 받았지 푸대접을 받거나 불편한 위치가 된 적은 없다. 그러나 이 곳 YMCA 에서 우린 인턴쉽도 아니고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정말 손님이었다.말이 좋아서 손님이지 그분들에게 짐이 될 때도 있었다. 우릴 위해서 신경 써주시는게 감사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런 우리의 위치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심지어 Y 관련 기관을 방문하고 축제에 참여했을 때도 놀러온 손님이자 외국인이었다. 국내 훈련 때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너희가 도움 줄 생각을 버려라-너희가 오히려 도움을 받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른 봉사활동에서도 결국은 그분들한테 준 건 별거 아니고 오히려 내가 그 활동과 사람들을 통해서 배울 때가 많았다고 인정하는 바이다.물론 손님 신분에서도 배우고 느끼는 바가 있었지만 처음에 이런 위치에 대해 의문이 솟아난건 사실이다.아무리 그래도 우리도 일 하면 할 수는 있는데 왜 써주지 않는걸까? 이럴 거면 나를 왜 뽑았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심지어 유치원에서 일하는 첫 2주는 실습생도 아닌 봉사자도 아닌 정말 일하는 사람이었다.유치원 겸 보육원이라 워낙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어서 엄격하게 다루다 보니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기도 하다. 나를 정말 일하는 사람 취급을 하고 별다른 호감을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태도가 섭섭했다.어떻게 보면 나는 돈 받고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청소든 뭐든 잡일을 해서 선생님이 하실 일이 줄어들었는데호감까진 아니어도 동료 대접은 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었다. 안 그래도 베트남어를 잘하는 건 아닌데 순간내가 외국인 노동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당황스러웠다.알고 보니 선생님도 일에 힘들게 치이다보니 그럴 만한 여유가 없으셔서 처음에 그런 태도를 보이신 것 같다.지금은 잠깐씩 틈을 내서 간간히 얘기도 나누고 간식도 나눠주신다.
쉽지는 않지만 항상 봉사활동 하러 오기 전에 배우러 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라온아띠에서 던져주는 본질적인 고민의 시간인 것 같다.관광객인지 유학생인지 봉사자인지 이런 나의 위치에서 나온 고민이 나란 존재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해 주는게 아닌가 싶다.
* 2009 4월 매주 금요일마다 베트남어를 가르쳐주던 대학생 친구 유이와 호치민 YMCA에서
3. 5명이라는 인원의 팀
난 지금까지 단체 생활 속에서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왔고 나름 즐겁게 보냈었다. 30명 , 20명 이 정도의 인원과 또 라온아띠 45명 속에서
그런데 많은 인원이나 혼자 지내는 것보다 5명과 함께 하는 것이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단체 속에서 나와 맞물리거나 어긋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 최악의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만 대하고 나와 맞는 사람들과 잘 지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곳은 5명이다. 시간도 5개월이다. 우린 팀으로 왔기 때문에 5명이서 맞춰서 일을 해나가야 한다. 팀원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 - 라온아띠와 단체, 활동, 관심사가 다 다를 때도 있다. 아직까지 다양한 사람, 아니 그보다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한 나로서는 적응해 나가기 힘들다.
내가 갖고 있는 신념이나 그냥 가볍게 생각하고 얘기하는 면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가볍게 얘기하는 면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 때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항상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날거라고 기대할 순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시아를 이해하기 전에 내게 던져진 숙제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린 팀으로 왔기 때문에 팀을 위해서 약간은 개개인 자신을 다듬어서 맞출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서로 나, 너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팀이라는 테두리에 어느 정도 묶여 있고 팀원 개개인의 행동이 전체의 이미지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팀으로 왔기 때문에 혼자 왔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보고 느끼는 것도 많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고 실제로 그러하다. 오히려 팀원들의 영향으로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거나 활동에 더 욕심날 때도 있다. 우리들 서로가 약간만 다듬고 보듬고 팀에게 맞춘다면 우리 팀이 더 잘 굴러갈 수 있다. 이곳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들 개개인도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호치민 장애인 클럽 앞에서 라온아띠 2기 베트남팀
ps 삼켰어야 하는 생각을 너무 뱉어놓은 건 아닐까 .. 하는 생각도 듭니다.제가 워낙 솔직하다 보니..;이른 감은 있지만 제가 라온아띠 자체에서 느끼는바와 고민을다른 팀원들을 물론 아띠에 관심 갖는 대학생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한 번 올려보았습니다.
Berita malaysia 4호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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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ita malaysia 4호가 나왔습니다. ^^ 4호에는 활동사진을 좀 더 많으니까~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ㅋㅋ 그럼 다음주에 나올 5호를 기대해주시고~ 오늘 하루 즐겁운 하루되세요 ^^
그/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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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왓디카/캅"이 곳 태국에 오면 가장 처음 접하는 인삿말이다. 안녕하세요~ 라는 이 인삿말은 말하는 사람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서 쓰왓디카, 혹은 쓰왓디캅으로 나뉜다. 카/캅은 존대어로 말하는 이가 여성이면 말 끝에 카.를 말하는 이가 남성이면 말 끝에캅.을 붙힌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이분법적인 선택지를 망설임 없이 선택하고 또 사용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닌 사람' 들은 이 선택지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여느 나라가 그렇듯이 이 곳 태국에서도 여성과 남성으로만은 구분할 수 없는 다양한 성정체성이 존재한다. 이 곳 태국에서 라온아띠로 활동하면서 우리는 이 두 정체성(여성,남성)의모호한 경계성에 서있는 사람들-사람들이 흔히 까터이(레이디보이), 톰보이, 게이라고 부르는- 을 만났다. 우리와 자주 활동하고, 잠깐 이 곳 삼강펭 Y 숙소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사람들이 흔히 까터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그/녀는 흔히 인사나 대화 도중에 '캅'이라는 남성용 존칭어를 사용한다.그/녀는 여자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여자샤워실에서 샤워를 한다.그/녀는 짧은 머리, 흔히 남성들이 하는 머리를 하지만 여성용 언더웨어를 착용한다.그/녀는 사회가 규정짓는 '여성스러움'의 기준에 충분히 부합한다. 그/녀는 거의 매일 바지를 입지만 가끔 치마를 입기도 한다. 이런 특성들이 그/녀를 '까터이' 라고 불리게끔 한 것일까.어쨌거나 그/녀는 여자/남자로 분리되는 이분법적인 젠더정체성의 어느 경계선에 서 있고그래서 '당연히' 사람들의 신기해하는 눈초리나 뒤에서 수근거리는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감수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가끔 외롭기도 할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그들을 '신기해하며' 그들을 '소외하고있는지도' 모른다.만일 '까터이'가 물리학적으로 남성이면서 사회학적인 여성을 담습하는 자. 라고 정의된다면우리 중 누구도 까터이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톰보이'를 물리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회학적으로 규정된 남성을 체화하는 자. 라고 정의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톰보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때로, 규정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다듬어진 많은 사회적 규정 속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밀어넣을 때, 우리는 비로서안정감을 얻게 되는 것일까?이 곳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인데,태국 사람들은 대게 얼굴이 하얀 것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태국 유스리더중 한 친구가 말한다.자기는 피부가 검어서 마이수와이(예쁘지 않다)고. 얼굴이 하얗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는 거의 듣지 못하는)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얼굴이 하얀 것이 미의 기준으로 규정되어, 검게 그을린 피부는 아름다움의 저 편으로밀려난다면, 그래서 그런 규정 속에서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 있을까?만일 이 세상의 미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정의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미의 기준은 없다. 는 규정을 내리고 싶다. 누가 어떤 줏대에 의해서 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평가할 수 있으며또 어떤 규정에 의해서 한 개인이 가진 젠더정체성의 스펙트럼을 여자, 또는 남자로만구분 지울 수 있단 말인가.태국에는, 그리고 세상에는 많은 그/녀들이 살아간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많은 사회적 규정들속에 소외 받고 상처받는, 혹은 이런 모호한 경계선상에 서 있는(이 경계선상에 서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소수다.)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간에 우리 모두는 정당하다.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이 땅에 당당하게 설 수 있다면.그렇다면 세상은 좀 더 자유로운 곳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