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4(영어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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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4
09년 5월 15일
제목 : 영어 교실
지난편지에 이야기 했던 “오이쿠시”지역으로 오가는 배는 아직도 요지부동으로 오이쿠시에서 진행하려던 모든 교육봉사 프로그램은 취소되었습니다.
하지만 5월달 부터 수도 딜리에 위치한 “테라산타”마을의 YMCA교육센터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과 후 영어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월 수 금요일 하루에 한 시간씩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의 첫 OT시간은 제가 진행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떨리던지........ 전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원래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을 잘하는 편인데도 처음 만나는 낯선 땅의 어린이들과의 만남이 저를 많이 긴장하게 한 것 같습니다.
6살에서 12살 나이의 20여명의 아이들이 와 주었습니다. 다행히 현지 언어도 미숙하고 영어도 미숙한 저에게 어린이들이 집중도 잘 해주고 의도한 대로 잘 따라와 주어서 순조롭게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순전히 아이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방과 후 교육은 이곳 아이들이 영어교육에 대한 요구를 채우며 학습에 대한 자세에 대하여 익히는 시간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3개월 동안 지속하려고 하는 저희 계획이 단순히 저희 욕심이 아닌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욕구를 채우는 작은 변화의 한 흐름이기를 소원합니다.
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3(‘오이쿠시’가는 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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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3
09년 4월 17일
제목 : ‘오이쿠시’가는 배 이야기
오늘 다니던 학교에서 가져온 달력을 보니 벌써 대학교는 중간고사 기간이더라고요. 요즘이야 말로 학교시험에서부터 자유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알게 된 대학생들도 다음 주부터 시험기간이라고 이번 주는 모두 휴강이라고 합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삶의 시험 가운데 지혜롭게 나아가시길.....
첨부한 사진 속 티모르 지도와 같이 동티모르라는 국가는 지리적으로 12개의 주(州)로 구성 되어있는데 그중 1개 주(州)인 오이쿠시는 완전히 분리되어 인도네시아 속에 들어 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배를 이용하는 것(해로(海路))과 인도네시아 비자를 발급받아서 국경을 통과하는 것(육로(陸路)) 두 가지입니다. 하지만 육로의 경우 여권과 비자가 필요하고 국경을 통과하는 부담감과 차량 비용 문제로 사실상 현지인들에게는 기피하는 길입니다. 그마저 배를 이용하는 경우 일주일에 두 번 (월,목)뿐이고 이동시간도 거리에 비하여 상당히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12시간) - 참고로 티모르의 나라 크기는 한국의 강원도 면적 정도입니다. - 사실 이런 이동의 문제가 이상하고 답답한 것을 떠나서 나라의 국토 개념에서 어떻게 저렇게 분리된 형태가 가능할까? 독립(02년 5월)을 하면서 차라리 오이쿠시지역을 포기하게 되거나 인도네시아가 지역적 유리함으로 계속 지배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의문이 들어서 주위 분들과 책을 찾아보니 사실 그 속에는 동티모르가 가지고 있는 식민역사의 아픈 잔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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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르 섬의 서쪽지역에 ‘오이꾸시’ 라고 불리는 동티모르의 땅이 일부가 있다. 1515년 포르투갈인 선교사가 상륙했던 곳으로서 포르투갈 시대의 영광을 기념하는 곳이다. 리스본 조약 (1859)에 의해 네덜란드에게 양도되었고 1904년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조약에 의해 동과서의 국경이 확정되었다. 두 번의 조약을 거치면서도 포르투갈이 포기하지 않았던 곳이 바로 오이꾸시이다. 그리고 이 지방의 영주가 포르투갈인 혼혈이어서 더욱 네덜란드령에 편입되는 것을 반대했다. 티모르 섬 원주민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대국의 마음대로 국경이 정해진 것이다. 유럽 식민주의의 잔재라고 할 수 있고 인위적인 국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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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갑자기 티모르의 지리를 이야기하면서 역사까지 말한 이유는 동티모르에서도
가장 낙후되고 형편이 어려운 편에 속하는 “오이쿠시”라는 지역으로 한국NGO 단체인 “개척자”를 도와 평화학교를 2주간 진행하는 것을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이쿠시에 가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일주일에 두 번 가는 배가 수리를 위하여 다른 지역에 간다고 운행을 중단하였습니다. 다른 배로 수송의 대체할 것이라는 우리의 순수한? 예상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평화를 생각해 보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물론 컸지만 그 보다는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가는 유일한 배를 그저 한없이 항구주위나 목적 없이 외지에서 계속 기다리는 이곳 분들을 보며, 그리고 긴급한 일이나 위급한 사고 앞에서도 그저 좌절해야하는 이들의 삶을 보며 마음이 무겁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시간의 단축으로 비유되는 우리의 교통 시스템의 발전을 바라보며, 부(富)편중과 몇몇 나라가 구가하고 있는 윤택함이 가지고 있는 불평등한 구조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며 이만 줄입니다.
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2 (아픈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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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서 온 편지 - 일상(日常) 2
09년 3월 31일
제목 : 아픈 팀원!
안타까움 소식을 한 가지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라온아띠”라는 이름으로 함께 온 대학생해외봉사팀원 중 한명이 댕기열로 의심되는 풍토병에 걸려서 심하게 앓게 되었습니다. 팀원이 아프고 나서야 이곳 동티모르 그곳도 한 나라의 수도라는 이곳 “딜리”의 열악한 의료시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오기 위하여 한국에서 함께 준비하고 고생하였던 팀원이 한달 만에 몹시 아파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그리고 그 동안 짓궂게만 굴었던 나의 모습이.....
그 동안 너무 겸손 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더 하여 보니 봉사자로 온 우리는 아픈 몸을 치유하러 돌아 갈 곳이 있지만 이 곳 분들에게는 안타까운 그야말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마음은 정말 찹찹했습니다.
동티모르는 열대 지방으로 계절이라고 하면 우기와 건기 두 계절뿐 입니다. 지금은 우기의 막바지로 아직까지도 하루에 한번 씩 비를 흠뻑 뿌리는 구름을 만나고 있습니다. 연중 높은 기온과 습기 그리고 열악한 보건 환경 탓에 말라리아를 비롯한 모기를 통하여 전염되거나 감염되는 풍토병을 제 주위 현지인들에게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병에 걸리면 NGO 단체에서 운영하는 치료소 혹은 제공하는 약을 제공 받아 그저 집에서 쉬는 것이라고 합니다.
팀원과 동티모르의 보건 환경이 속히 개선되길 소원합니다.
India essay _0%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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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란 없다_ 5/1 어제 사라(High-Y 단원으로 우리를 홈스테이를 해준 아이^^)가 YMCA에 놀러와서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이 휴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콜로니(day care center)를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사라의 초대를 거절했다. 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래도 콜로니를 가야겠지. 그래서 오늘은 케랄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콜로니로 향했다. 길가던 중 항상 만나던 콜로니 학생 ‘자스나’도 오늘은 못온다고 하여 우리끼리 쓸쓸하게 올라갔다. 가는 중간에 우리는 자스나도 없으니까 정말 기분이 묘하다며 애들이 별로 안올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진짜 애들이 아무도 안올수도 있지 않나?” “그건 진짜 0% 아니야? 우리 아무리 안와도 10명은 왔었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세상에 0%란 있을수 없지 않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0.0‥1% 의 확률에 대해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콜로니로 갔다. 그러나 콜로니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학생들은 없었다. 역시, 그랬다. 0%란 있을수 없었다. 모든 삶은 zero란 없다. 0.0‥1% 의 확률이 나머지를 무의미하게 할수도 있는 것이다. * 무엇이든지 확신하지 않을것. 내 잣대로 그것이 100%라고 믿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톡톡 인도생활정보(Kerala 주)_ 습관 또는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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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인도생활정보(Kerala 주)_ 습관 또는 풍습
- 아시아를 여행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Hello'와 'No problem'일 것이다. 혹여나 문제가 있는 일이라도 여기선 문제가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 여기서 ‘Yes’는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니요’와 같이 절래절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뚜기 마냥 움직인다.
- 오른손은 음식을 집어 먹는 손이고 왼손은 화장실에서 뒷물을 하는 손이다. 괜히 인도에 서 손으로 먹는다며 왼손을 올리지 말것! 대신 반찬을 더 가져오거나 물을 마실때는 왼손을 이용한다.
- 먹은 즉시 쓰레기는 길가로 휙휙~
- 우리가 실수를 하면 ‘어머나’를 많이 하는 것처럼 여기서는 ‘아이요~’라고 많이 한다.
- 집에는 맨발로 생활. 타일 바닥이 시원해서 그런가? 상점도 그런 경우가 많다. 산에서도 맨발로 움직이는 사람이 많다. -슬리퍼가 미끄러워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 양치는 하루에 한두번만. 자기전 혹은 아침에 일어나서만 한다.
- 꽃무늬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양산에 비해 이곳은 오로지 검은 우산뿐...
- 차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마주오는 차와 부딪힐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항상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쉭쉭 잘 빗겨간다.
- 여자들은 긴머리가 생명! 여기서는 지독히도 지킨다. 자연 곱슬 머리가 대부분이라(나는 파마를 했나 오해를 했다) 위쪽은 코코넛 오일이나 다른 Hair Oil를 발라 쫙 붙이고 밑에는 땋거나 하나로 단정하게 묶는다. 그리고 화려한 금귀걸이와 금목걸이는 필수^^ 거기에 옷은 사회시간에 배운것처럼 ‘사리’를 입지만, 젊은 사람들은 ‘주리다’라는 변형된 옷을 입는다. 펑퍼짐한 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상의로 허리 밑으론 옆이 트여져 있으며 팔은 꽉~ 끼게 입는다. 어떻게 벗을지 궁금할 정도로;
- 남자들은 딱 맡는 상의와 바지를 입거나 도띠나 문누(천 같은것을 휘휘 감아 치마처럼 입는것)를 입는다. 상의는 우리나라 여성의류처럼 길이가 짧고 라인이 들어가 있는게 특징이다. 남자들끼리 껴안거나 버스에서 무릎위에 앉는등의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여행자가 그럴 경우 동성애로 오인 받을수 있다 ;;ㅎ
- 수염을 기른 남성을 많이 볼 수 있을것이다. 여기서 콧수염은 ‘Power'를 의미한다.
- 버스는 빨리 타지 않으면 그냥 출발할 수 있다. 버스엔 운전기사, 문닫는 사람, 돈걷는 사람 세명이 타고 있으며 돈걷는 사람에게 목적지를 말하면 종이로 된 버스표와 돈을 바꾼다. 벨은 없고 돈걷는 사람이 종을 울려 멈출것을 알린다. 종이 한번 울리면 멈춘다는 뜻이고 두 번 울리면 사람이 다 탔으니 출발하라는 뜻이다. 세 번은 취소, 혹은 출발하라는 뜻이다. - 버스 앞쪽엔 꽃(조화, 생화)으로 꾸미고, 각자 종교의 신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라온아띠 스리랑카팀의 <랑카뉴스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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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저희 팀의 활동및 생활을 뉴스를 만들어 보았네요.3월호인데...5월 12일에 업로드하게 되었네요............4월호는 귀국전에는 올릴려고 생각중입니다.많은 구독과 관심 부탁드릴께요아참. 뉴스는 JPG파일로 페이지 보고난후에는 <space bar>를 누르면 다음페이지로 넘어갑니다
Berita malaysia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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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른한 Berita malaysia 3호가 나왔어요 ^^저번주에 Penang에 다녀와서 신문이 약간 늦게 나왔네요 ^^;;다들 Berita malaysia 3호를 기다리고 계셨을 텐데 죄송해요~ㅠ다음주에는 Berita malaysia가 중간레포트로 인해서 다다음주에 4호가 나올것 같습니다.ㅠㅠ 한주 쉬는 것에 슬퍼하지 마시고 그럼 다다음주에 4호로 만나요 ^^
라온아띠 in CAM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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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티모르에서 흥겹게 밥을 짓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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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물집이다. 그것도 두 개다. 오늘은 특별히 '뗌뻬'를 많이 사온 마나와 함께 밥을 짓고 싶었을 뿐인데. 한창 칼 쓰는 데 재미가 들린 나는 마나와 함께 뗌빼를 썰기 시작했다. 하나 두 개 세 개.. 썰어 가는데 살짝 검지 손가락 안 쪽이 아파왔다. 칼의 무딘 쪽과 부딪히는 부분이 빨개진 것이 보였다. ‘마나는 나보다 더 작고 여린 손으로 빠르게 썰어 가고 있는데’ 고로 나도 다시 흥겹게 뗌뻬 썰기에 몰입했다. '괜찮아! 재밌다! 재밌어!' 그렇게 썰기를 마치고, 상추를 한 장 한 장 뜯어 다듬은 뒤 씻고, 토마토까지 썰어 얹어 찬 두 가지를 만드는 데 일조한 뒤 공부방으로 돌아왔다. 책을 좀 볼까 하는데 계속 아까 그 자리가 아픈 거다. 보니까 글쎄, 물집이 하나 두울 돋아나 있다. '으악!' 갑자기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아파도 칭얼대기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번 만큼은 넬슨 까롤리나 나노에게 말도 못했다. 사진을 살짝 찍어 남기고,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그동안 얼마나 그만한 일도 안 했으면 10분 만에 물집이 잡혀 버렸을까. 오... 한국에서 난. 사실 바보였다. 요리에 관한 한, 부엌일에 관한 한 내 경험은 전무했다. 절대적으로 어머니께 의존하고, 도시의 편리에 젖어 하기 싫은 일은 제쳐뒀다. 가사는 절대 내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시도조차 안했던 거다. 그리하여 스물 셋의 어엿한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잘 하는 요리가 있기는커녕 라면 물도 못 맞추고 밥도 지을 줄 모르는 것 같다. 양평에서의 2박 3일이 나에게 그리 길었던 건, 추위와 서먹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취사'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잘 보이고 싶은 팀원들 앞에서.. 식사 준비만 할라치면 꿔다놓은 보리짝마냥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어찌 그리 싫었던지 모른다. 그때 처음으로 '난 참 바보같이 살았군요'라고 생각했다. 동티모르에 온지 딱 두달이 된 지금에는, 흔쾌히 "오늘 설거지는 내가 하겠어"라 말할 줄 알고, 주말이 다가와 직접 요리를 해 먹게 되는 것에 기뻐하고 있다. 아침 일과가 된 빨래와 바닥 청소도 사랑한다. 내 힘으로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곳을 준비하고 단장하는 것은 단순히 '가사일을 한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었다. 내 몸을 드디어 스스로 건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이에게 가사 노동을 제공하면, 삶을 지탱하는 아주 원초적인 행위를 공유하는 것이고 말이다. 나눔 토론 회의로는 채울 수 없는 그 느낌. 티모르에 와서 배우는 것은 점점 늘어간다.이지숙 jisook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