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 wat dee karp,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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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언제오나 했던 날이... 오지 않을줄 알았던 날이 찾아왔다.하지만 당일이 되서도 한국에 간다는게... 이곳 삼캉펭YMCA를 떠난다는게 믿겨지지 않았다.언제나처럼 일어나서 1층에 내려간뒤 피낭과 피멈에게 '싸와디캅' 이라며 인사를 했고피낭이 요리해준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평소처럼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는데..방에 덩그러니 있는 캐리어를 보니 평소와의 일상과는 다른 한가지를 해야한다는게 생각났다.옷을 먼저 꾸깃꾸깃 쑤셔넣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집어넣을때 까진 늘상다니던 캠프에 가는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캠프가 끝나면 늘 그랬듯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것만 같은....하지만 이곳 친구들과 홈스테이를 하면서 받은 선물들을 캐리어에 집어넣기 시작했을때야비롯 깨달았다. 오늘이 바로 마지막 날이라는것을....사연이 담긴 물건들을 하나하나 캐리어에 집어넣으며 지난 추억들도 같이 집어넣었다. 분명 태국에 올때보다는 가벼워진 짐이었지만 지난 5개월간의 추억이 들어있기 떄문일까? 들기조차 버겁게 느껴진다..짐을 정리한후엔 1층으로 내려갔다. 늘 보던것과 같은 풍경이었지만, 이제부턴 늘 볼수없으리란 생각에 평소엔 찍을 생각을 안했었던 피낭과 피멈의 모습을 담아두고 싶었다. 매일 보기때문에 그동안 안찍었다면 핑계일까? 핑계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사진을 한장한장 찍었다.그리고 5개월간 지지고 볶고 했던 집을...삼캉펭 YMCA를 떠났다.
○ 피낭과 피멈과 함께솔직히 그 다음부터는 뭘 했는지조차 모르겠다. 정신이 들었을때는 터미널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팀원들과 피낭과 피멈의 우는 얼굴을 보고 덩달아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뿐....그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정든 이곳을 떠나는구나...라고...○ 터미널에 들어가기 전친구라고 먼저 불러줬던 피요.쿤따라고 부르며 옆구리를 찔러대던 피똔예의범절이 몸에 베셨던 피푸.모든 이를 덱덱으로 취급하시는 호탕하신 피프레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시던 피낭삼캉펭에서 매일 우리 뒷바라지를 해주시던 피멈so cool하신 피샤언제나 안전운전..은 아니지만 편안한 여행길을 책임지셨던 피툰대장님이신 피디그리고 온, 프로그, 땡&모, 핌, 자캼 3총사와 띵똥3총사, 윌리엄, 치아, 왕녀를 배웅나온 아랍왕자와 여러 친구들...그네들을 보는게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슬펐다. 이유없이 슬펐다. 하지만 인사는 해야겠지라면서 우는 얼굴로 떨리는 목소리로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한국에 돌아가면 good boy 가 되라며 웃음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피프레의미소를 뒤로 한 채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무언가가 발에 메여있는지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갔다.그렇게 걸어가다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니 유난히 아름다웠다. 언제나 아름다웠던 태국하늘이지만유독 아름다웠다. 슬프도록 아름답게 물들어있는 하늘이었다. 이 하늘을 보는것은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라며 혼잣말을 하고 있을때 옆을 지나가던닥완(닥스훈트+따완)이 멋진 한마디를 해줬다."오늘 우리는 그 하늘을 날아가요"'그렇지! 하늘을 날아갈수 있지. 날아올 수도 있고!' 그제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발걸음도 가벼워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 아마도 태국과 한국의 중간지점 즈음..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그리운 고향에 발을 디뎠다. 5개월만에 만난 고향에 말이다.그렇게 귀국을 한 뒤 지금은 한국에 있는 집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솔직히 5개월간 못본 한국이기에 한국에 돌아오면 자동차가 날아다닐줄 알았지만 너무나도 그대로였기에 태국에서의 5개월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옆에 있는 사진들과 마음속에 담겨있는 것들을 보니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추억과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잊지 못하겠지...아니..어떻게 잊을수 있을까?타타의 메뉴가 머리속에 들어있고,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눈에 박혀있고, 정복하지 못했던 팍치냄새가 코를 간질이고, 피낭이 해준 카오똠의 맛이 입안에서 멤도는데...그리고 태국에서의 황금빛으로 물든 추억들이 심장에 꽉 차있는데.....어찌 잊으랴??난 추억은 가슴으로 하는거고, 기억은 머리로 한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태국에서의 5개월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그렇기에 추억임이 분명하리라..추억은 전부 기억할수 있지만, 기억은 전부 추억할수 없기에 지난 5개월은 생에 다시없을시간들, 인생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할 아름다운 추억이고, 경험이고, 선물이다.꼭 기억할꺼다. 태국에서의 5개월을...'sa wat dee karp, thailand, pot kkan mai'
캄보디아에서의 세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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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퍼와 사랑의 집짓기 [연재] 캄보디아에서의 세번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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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미 기자 fang0429@naver.com
오늘은 빵퍼와 사랑의 집짓기 활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편에서는 다일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밥퍼’ 활동에 대해 소개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직접 찾아가는 무료급식인 빵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빵퍼는 집이 센터를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위해 다일에서 직접 찾아가 빵을 나누어 주는 활동입니다. 물론 2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밥퍼 차로 멀리 사는 아이들을 태우러 가긴 하지만 멀리 떨어진 마을에 모든 아이들이 차를 타고 센터로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빵퍼가 멀리 사는 아이들에게는 많이 기다려지는 하루일과 중 하나랍니다. 빵퍼의 메뉴로는 야채빵과 소보루빵이 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소보루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다일의 소보루빵은 특히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이 많은 빵들은 중국에서 봉사를 온 제빵사 ‘니일’ 이 현지 스텝들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빵을 만들고 있는 라온아띠 주니어들과 제빵사 니일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밥퍼 활동이 마무리될 오후 두시 즈음이 되면, 오전에 만들었던 빵들이 오븐에서 구어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빵들을 하나하나 포장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전해줄 빵퍼 준비를 마칩니다.
▲빵을 포장하고 있는 라온아띠 주니어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빵퍼 준비가 끝나면 센터 차를 타고 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로 향합니다. 마을에 도착해 빵퍼를 외치면 아이들이 나와 다일을 맞이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빵을 받기 위해 두 줄로 나누어 섭니다.
▲빵을 받기 위해 두줄로 앉아있는 아이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두 손으로 빵을 나누어 주고 있는 라온아띠 주니어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빵퍼 또한 아이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음식을 나눈다는 의미로 빵을 나누어 주는 봉사자는 꼭 두 손으로 빵을 전하여 주어야 합니다. 수많은 아이들에게 한명한명 두 손으로 빵을 나누어 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음식을 일방적으로 베푼다는 의미보다는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그 의미가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만 있다면 이정도의 수고스러움이야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답니다.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다보면 받은 빵을 옷 속에 숨기고 다시 빵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윗도리 속에 감춘 빵 때문에 배가 빵모양으로 불룩 튀어나왔는데도 빵을 달라며 손을 붙잡는 아이들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사실 다일에서 아이들을 위한 밥퍼, 빵퍼를 하는 것은 아이들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배고픔을 달랠 수 있어야 그 다음에 꿈도 꿀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결국 밥퍼와 빵퍼는 단순한 무료급식의 개념을 넘어선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활동인 것이지요. 빵을 받은 모든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아이들도 자라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그럼 이번에는 사랑의 집짓기의 훈훈했던 현장으로 떠나볼까요?
▲빵을 받은 아이들의 모습ⓒ
사랑의 집짓기는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봉사자들이 집을 지어주는 활동입니다. 집을 지어줄 대상은 다일에서 여러 가지 기준을 통해 선발하여 꼭 필요한 사람에게 집을 지어줄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지어주었던 집은 8남매의 집이였습니다. 8남매와 부모님까지 총 10명의 식구들이 아주 작은 집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빨리 튼튼한 새 집이 필요했습니다.
▲집의 뼈대를 만들고 있는 라온아띠들과 현지스텝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위의 사진처럼 기본적인 뼈대를 만들고 나면 본격적으로 나뭇잎을 엮어 집의 벽면을 만들게 됩니다. 나뭇잎으로 벽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나무판으로 튼튼하게 틀을 만들어 주어야합니다.
그리고는 철사를 이용해 나뭇잎을 만들어진 나무틀에 엮어 줍니다.
집짓기를 하는 중간 중간에도 라온아띠는 쉴 틈이 없었습니다.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어느새 달려와 안아달라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얼마 뒤 정신을 차려보면 이렇게 양손가득 아이들을 안고, 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밝기 때문에 처음 보는 라온아띠들에게도 쉽게 다가와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안고, 업고 있는 라온아띠 주니어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이런 아이들과의 달콤한 휴식도 잠시, 집짓기는 막바지에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이틀의 작업, 드디어 8남매에게는 새로운 집이 생겼습니다. 기존의 작은 집은 부모님의 생활공간으로, 그리고 옆에 지어진 새 집에서는 8남매가 생활하게 된다고 합니다.
집을 완성한 후 8남매의 어머니와 집 안을 살펴보기 위해 함께 집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이때 8남매의 어머니께서는 손을 꼭 잡으시며 “어꾼,어꾼”을 반복하셨습니다. 캄보디아어로 ‘어꾼’ 은 감사하다는 의미인데 우리들의 이틀의 작은 정성이 그분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공간을 만들어준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집을 완성하고 팔남매의 어머니께 치약과 수건 등 기본 생필품들을 전해 드렸습니다.
▲팔남매 가족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는 라온아띠 주니어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이렇게 팔남매의 집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집 앞에서 팔남매 가족들과 라온아띠 주니어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팔남매가 새로 지어진 집에서 더 많은 꿈을 꾸며 멋진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래봅니다.
▲뒷면에서 바라본 팔남매의 집 (왼쪽이 새로지어진 팔남매의 집 )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오늘은 빵퍼와 집짓기였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기록은 다음 편에서도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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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4일 11:57©2009 청소년 생생 리포트 - 바이러스
캄보디아에서의 두 번째 이야기 (라온아띠 주니어 -바이러스 기사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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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의 두 번째 이야기 [연재] 다일센터와 밥퍼나눔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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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미 기자 fang0429@naver.com
오늘은 제가 봉사했던 다일센터와 밥퍼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가 봉사했던 다일센터는 시엠립 외곽의 프놈 끄라움 마을 근처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동양 최대의 호수인 똔레삽과도 인접하고 있어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농업에 종사하는 프놈 끄라움 사람들과 보트피플까지 만날 수 있는 곳이였습니다. 다일센터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크게 나누자면 현지 아이들의 교육활동과 현지 교민 자녀들을 위한 한글학교 수업, 결식아동들을 위한 무료급식인 밥퍼, 빵퍼 나눔활동과 다친 아이들을 치료해주는 클리닉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다일센터내에 위치한 클리닉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다일센터에서는 주변 마을 사람들의 취업을 돕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기 위한 컴퓨터 수업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전기가 약해서 밤만 되면 암흑이 되어버리는 곳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발전기를 돌려야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답니다. 원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곳에 구비된 컴퓨터들은 수원지역에서 지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다일센터 내에 위치한 컴퓨터교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센터 한쪽에는 공동우물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수도시설이 좋지 못한 시엠립의 일반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우물을 함께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가끔 센터 주변을 지나가다 보면 사진 속 모습처럼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불편하게 앉아 샤워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더운 캄보디아에서 마음 편히 씻을 수도 없다는 사실에 많이 안타까웠답니다.
▲션-정혜영 부부가 기증한 센터 안 공동우물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센터에 있는 이 공동우물은 평소 세계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유명한 “션-정혜영” 부부가 기증한 우물이었습니다. 캄보디아까지 사랑을 전해주다니 정말 마음이 따뜻한 부부인 것 같습니다.
▲센터에서 즐겁게 놀고있는 아이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다일센터에서의 봉사활동이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다일센터가 '도움을 주는 부자나라의 사람과 도움을 받는 빈곤국의 사람의 만남' 이 아닌, 말 그대로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모임의 장소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였습니다. 무료급식을 하지 않고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친구들과 놀기 위해 이 곳을 찾는 아이들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센터 마당에는 고무줄놀이나 구슬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센터에 지어진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로 언제나 붐볐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일센터의 하루에 대해 소개해 볼까요?
다일 센터의 아침은 아이들을 위한 밥퍼 준비로 분주하게 시작됩니다. 점심에 있을 무료급식 ‘밥퍼’ 에는 평균 600~700여명의 아이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오전 내내 음식 준비를 합니다. 음식은 주로 10여 가지의 메뉴가 돌아가면서 준비됩니다. 하루하루 아이들이 ‘오늘은 어떤 음식이 나올까?’ 기대하며 센터에 올 수 있게 하고픈 센터 스텝 분들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밥퍼 음식 준비는 현지 스텝 분들과 라온아띠가 함께 준비하였고, 참고로 이날 메뉴는 볶음밥 이였습니다.
▲음식준비를 하는 라온아띠 주니어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음식 준비가 다 되어 갈 때 즈음이면 센터는 다시 분주해집니다. 바로, 걸어서 올 수 없는 거리의 아이들을 위해 센터차로 직접 아이들을 태우러 가기 때문입니다.
밥퍼 차가 마을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뛰어 나와 밥퍼차를 반겨줍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재빠르게 밥퍼 차에 오른답니다.
아이들 중에는 자신들보다 어린 동생을 안고, 업고 밥퍼 차에 오르는 아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자녀가 다섯 명 이상씩 되는 캄보디아에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하루 종일 고된 일에 시달리는 부모님대신 아이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동생을 안고 가는 아이들과 밥퍼차로 향하는 라온아띠 주니어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이렇게 밥퍼차 가득 아이들을 태우고 다시 센터로 향합니다.
센터에 돌아오면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밥퍼 활동이 시작됩니다.
아이들이 줄을 서면 음식을 식판에 담아 한명 한명 전해줍니다. 이때 식판을 전해 주는 사람은 무릎을 굽히고 꼭 두 손으로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춰 아이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음식을 전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죠.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는 라온아띠 주니어ⓒ 인터넷뉴스 바이러스그리고 아이들의 옆에는 또 하나의 줄이 서게 되는데 이 줄은 바로 봉사자들의 줄입니다. 너무 어려서 식판을 들기 무거운 아이들이나 동생을 안고 있는 아이들의 식판을 들어주기 위해 서 있는 줄이죠. 한손엔 식판을 들고 다른 한손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식탁으로 향할 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답니다.
▲다일센터에서 식사중인 아이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밥퍼 활동을 하다보면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아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봉지에 음식을 담아가는 것이지요. 상황이 여의치 못해 센터에 올 수 없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이 먹을 음식을 가져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봉사자들의 손길은 바빠집니다. 아이들의 숫자에 비해 부족한 식판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빠른 손놀림의 식판 설거지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남은 잔반의 경우에도 주변에 가축을 키우는 집에서 가져가기 때문에 잔반을 가져갈 아이들과 함께 깨끗이 모아둡니다.
600~700여명의 아이들의 배식이 끝나고 나면 밥퍼의 하루는 멀리서 온 아이들을 밥퍼 차로 다시 마을까지 데려다 주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오늘은 다일과 밥퍼 이야기였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이야기는 다음편에서도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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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3일 11:39©2009 청소년 생생 리포트 - 바이러스
[현지르포] 캄보디아에 다녀왔습니다 (청소년 전문 인터넷 신문 '바이러스' 기사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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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르포] 캄보디아에 다녀왔습니다 캄보디아, 12일의 기록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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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미 기자 fang0429@naver.com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소보미 기자가 캄보디아에 다녀왔습니다. 그는 캄보디아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현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가 캄보디아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이제부터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영화 킬링필드 198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개부문 수상후보에 오르며 당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킬링필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이웃나라 베트남에서 벌어진 전쟁에 함께 휘말리게 된 캄보디아를 취재하는 뉴욕타임즈의 기자 시드니와, 그와 동행하다 헤어져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는 캄보디아 기자 디스프란의 삶을 통해 캄보디아의 당시 실상을 거침없이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디스프란과 시드니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제부터 킬링필드의 나라 캄보디아에서의 뜨거운 12일의 기록이 시작됩니다~
뜨거운 태양에 불쾌지수가 높아만 가던 7월말 KB와 YMCA의 지원으로 라온아띠(‘아시아의 즐거운 친구’ 라는 순 우리말) 주니어 1기가 되어 캄보디아로 12일의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방콕을 거쳐 시엠립으로 또 한 시간. 이렇게 반나절 이상을 비행기를 타고서야 캄보디아, 그 중에서도 앙코르와트가 살아 숨쉬는 곳, 시엠립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시엠립 공항에 내린 라온아띠 주니어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공항에 내리자마자 캄보디아의 더운 날씨가 라온아띠 주니어들을 반겨주었습니다. 캄보디아는 하루 최고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더운 나라랍니다.
관광지가 주로 위치한 시엠립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마을의 숙소. 그곳에 짐을 풀고 집 밖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바로 오토바이였습니다. 현지인의 대부분이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애용한다고 합니다.
시엠립시내와 한적한 마을. 학교주변, 어느 곳에서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숙소 앞을 지나가는 오토바이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중인 사람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캄보디아 사람들의 주거문화를 살펴보자면 일부의 부유한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리석이나 석재를 사용하여 집을 짓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나뭇잎을 엮어 만든 집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보통 집을 짓는데 빠르면 일주일 내, 늦어도 한 달가량이면 집 한 채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캄보디아이기에 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우기가 되면 차오르는 물을 피해 집을 빠르게 옮겨 짓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에 이처럼 속도를 내서 집을 짓는 듯합니다.
▲캄보디아의 일반적인 주거모습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시엠립의 평범한 마을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이렇게 나뭇잎으로 엮어진 집들을 지나쳐 마을 어귀를 조금만 벗어나다보면 넓은 평원을 마주하게 됩니다. 캄보디아는 국토의 대부분이 평원이기 때문에 평원을 지나 마을, 또다시 평원을 반복하며 이루어집니다. 가끔 평원을 지나다 보면 스콜을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은 하늘아래에서도 흐린 하늘과 맑은 하늘을 한 사진에 담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답니다.
▲캄보디아의 넓은 평원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잠깐, 캄보디아의 재미있는 의생활을 이야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파자마를 평상복으로 애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시엠립 시내를 제외한 일반 마을의 어린 아이들 중에는 옷을 입지 않고 생활하는 아이들이 더욱 많고, 옷을 입는다 하더라도 구호품으로 들어오는 옷이 대부분이지만 봉사활동을 주로 했던 다일센터나 주변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파자마를 입고 입는 사람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캄보디아에서의 첫 번째 기록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캄보디아에서의 기록은 다음편에서도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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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2일 10:27©2009 청소년 생생 리포트 - 바이러스
<라온아띠 Jr 1기> 캄보디아.. 그 후 (링크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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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으... 미치겠다 진짜일어나자마자... 도저히 적응이안된다 침대에서 혼자 잠이든다는거, 잠들때 코고는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거, 아무도 깨워주는 사람이 없다는거, 일어나면 주위엔 아무도 없는거, 아침을 혼자 식탁에앉아서 차려먹는거, 아침밥을 접시가아닌 밥그릇에 먹는거, 짜여진 일정대로 움직이다가 이제는 내가 자유롭게 일정을 짜가면서 움직여야 한다는거......... 일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행동한 모든게 다 어색하다...캄보디아에서의 생활에 너무 적응해버렸나봐... 마치 그곳에서의 생활은 꿈이고 이제 꿈을깨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지금도 내 눈엔 캄보디아 어린친구들이 달려들어서 장난을 걸구, 우리 팀이 한마음으로 캔들라이트 하고 밤새고 놀고, 센터갔다가 오는길엔 트럭타고 다같이 노래를 부르며 시골길을 달리고, 라온아띠 형,누나들과 다일공동체 식구분들이 따뜻하게 챙겨주는 모습이 어른거리는데.....너희들과 헤어진지는 하루, 24시간도 채 되지않았는데 벌써부터 너네가 너무 그립고 보고싶다 이 홈피 딱 들어갔을때 BGM으로 '언젠가는' 저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순간............... .......... 알지?
10박 11일동안 우리는 살짝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내 생각엔 우린 환상의 하모니였어각자 캐릭터들이 너무 개성있어서 한번도 만나보지못한 친구들이였는데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캐릭터였기때문에) 우리 팀 모두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각자의 가슴속에는 캄보디아에서의 모든활동이 네버엔딩 스토리로 기억될 거라고 믿어캔들라이트때 얘기가 나온거처럼 우리 10명모두 연락 쭉 하면서 우리끼리라도 다시 캄보디아에 다시 가보자
난 캄보디아에서 얻어온게 진짜진짜 많은거같애 먼저 캄보디아에서의 잊을수 없는 추억도 있고(아직도 캔들라이트를 하는 순간과, 배구대회때 클리닉에서 애들붙잡고 운기억은... 절대 못잊어 ), 외동인 나에게 완소 동생이 생겼구, 가장소중한 라온아띠 Jr 팀과의 우정들... 가장 좋았던거는 내자신을 다시 돌아볼수있는 계기도 되었던거 같애... 너희들도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많은걸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최고연장자인 나와 5명의 고2들은 아마 많은 기회가 없겠지만 막내 시뚱이를 비롯해서 중딩들은 이런기회가 아마 진짜 많을거야. 난 이런 활동이 있다는것을 너무 늦게알아버렸지만 너희들은 이 활동을 계기로 더 많은 경험을 해보길 바랄게그리고 고딩들은... 알지? 죽어라 공부만하자 ㅋㅋㅋㅋ 그러고 2년후엔 각자의 꿈에 가까워진 상태로 다시 모이는거야 ㅎㅎㅎ할말이 진짜진짜 많은데....... 기억이 안난다 ㅋㅋㅋ 하고싶은말 기억날때마다 들려서 또 글 올려야지모 ... ㅋㅋ 연락끊는자식 한명이라도 생기면 내가 찾아가서 싸대기때린다 ㅡ_ㅡ (안되면 꿈에서라도....)다들 다시 만날때까지 몸건강히 잘 지내고!!! 우리 추억 잊지말자!!!!출처 : 라온아띠 주니어 1기 캄보디아팀 카페글(본인 작성) http://club.cyworld.com/5356766813/218164
[Last scene]듸비아 에서 엄윤아로 돌아오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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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이 걸렸습니다.인도에서의 이름. 'DIVYA'로 5개월간 살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을때 나에 대해 실망하며, 라온아띠를 후회하며, 다른 사람을 탓했습니다온전히 인도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했으나 나는 '한국피를 가진 인도인'이었나 봅니다.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현지옷을 입고, 현지식대로 밥을 먹으며, 현지어를 하는 제가 신기한 외국인 정도로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언제 또 올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저는 "아례일랴(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어쩌면 이게 진짜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론 너무 매정해 보이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만약에 잠깐 왔다 가는 것이었다면 그냥 또 오겠다며 거짓아닌 거짓말을 했을수도 있겠지요.난 이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그들은 진짜 제가 올때까지 기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미안합니다.외국인 몇명이 허락도 없이 삶을 헤집어 놓고 갑니다.그리고 고맙습니다.헤어짐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는 당신네들이,말이 아닌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것이.인도에서 나는 듸비아 였지만한국에서의 나는 엄윤아 입니다.또다시 이렇게 제 생활로 돌아왔지만듸비아로 살아갔던 5개월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조언과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이말을 해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윈둠까남" (또 봐요)
2009.08.01. Campaign in Samkhanpaeng street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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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우리의마지막활동이될듯한캠페인...우리가 살고 있는(우리의 주요 숙소) 삼칸펭YMCA 바로 앞에는 Main street가 하나 있는데,이곳에서 매주 토요일 마다 STREET MARKET이 열린다.치앙마이에 있는 나이트바자나 선데이마켓보다 조금 더 서민적이고,외국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정말로 태국스러운 곳이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이벤트 중에 하나이다. 바깥 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토요일의 Street market은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여기에서 지낼 땐 항상 토요일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뭔가 사고 싶어서라기 보단 그냥 그 분위기 자체를 즐겼달까,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6월 이후(사실은 5월 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에는 본격적으로 태국의 우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street market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을 때가 많았다.오늘은 살 수 있을까, 오늘은 비가 안와야 될 텐데 하면서 6, 7월을 보냈다.홈스테이도 하고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제대로 street market을 가지 못했는데 벌써 마지막이다.이제 태국에서의 토요일도 마지막이야,바로 3일 뒤면 태국을 떠난다니 믿기지가 않는다.왠지 평생 살고 있을 것만 같았던 곳이여서 그랬나 ?어쨌든,7월 마지막 주 부터 태국팀은 좀 바빴다.태국으로 한국에서 오는 2팀의 단기 봉사팀이 들어오게 되어 송국장님과 피인타논의 부탁으로 심각하게 회의를 한 끝에(?) 더이따오팀은 주니어 라온아띠를 맡아서 활동하게 되었고 우리 미녀 람푼팀은(^^) 인천Y에서 오는 꼬꼬마들을 맡아서 활동하게 되었다.이제 끝일 것 같았던 홈스테이도 하고 벽화도 그렸다.그리고 오늘은 공식적으로 우리의 마지막 활동이 될 캠페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제대로 설명을 듣진 못했지만 (아마)1기 활동의 연장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 삼칸펭 street market에서의 캠페인활동은 이어질 것 같다.태국아이들은 전날 부터 삼칸펭에 머무르면서 이런 저런 준비도 하고 각 팀별로 퍼포먼스도 준비하고 전투적인(?)태세로 캠페인에 몰입했다.주니어 라온아띠 친구들, 그리고 인천Y 친구들 모두모두 열심히 다 참여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또 성공리에 캠페인을 마칠 수 있었다.마지막에는 집에 옮겨심을 수 있는 새싹(?)과 재활용 가방을 팔았었는데 팔다가 노래부르다가 팔다가 춤추다가 태국친구들, 한국친구들 함께 즐길 수 있었다.우리의마지막활동이이렇게끝났다▲ 각자 팀을 나눠 준비한 주제로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발표▲ 피챠님의 반 협박으로 이뤄진 응원단(웃음)▲ 함께 즐겨준 고마운 인천Y 친구들 윗줄, 좌로부터 오플로이, 간지지수, 영어를잘할것만같은정열이, 김퐈, 구따완, 귀염둥이...▲ 찍사한다고 제대로 사진 못찍어서 같이 찍어준 친절한 애기들과 장마리
태국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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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많이 그리울 것 같은 사람들과 장소는먹고 자고 싸고 일하고 싸우고 웃고 운동했던 숙소, 쌍캉펭YMCA나 YMCA 사람들이 아니라집 앞에 있는 작은 TESCO LOTUS와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름을 묻고, 여기 왜 왔는지 묻기 시작했다.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사실 여기서 나는 봉사자가 아니다. 다치면 안되는 '귀빈'이다.내 이름은 춈푸, 박선하가 아니었고 '콘까올리(한국인)' 또는 '국민은행과 한국Y서포트를 받아서 온 아이' 였다.그것에 질리고 질려 있던 내게 막무가내로 반말을 찍찍 하며 이름을 묻던 그 아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가 없었다. Y에서 하지말라는 일은 다 종용하는 그 아이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내가 말을 못알아들으면 발차기부터 날라오는 게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지점장 아저씨가 돈도 안쓰고 앉아서 시끄럽게 놀다가 별 희한한 짓 다 하고 가는 나를 슬슬 째려보기 시작해도 나는 버티고 앉아 있었다.매일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테스코에 가서 가끔 일도 하고, 발차기하고 머리 치면서 놀고, 되도 않는 태국어로 수다떨고, 그리고 그 앞에 앉아서 아이들과 술을 마셨다. 태국 Y의 답답함에 눌려 있던 내게 그 아이들은 오아시스 같았다.실제로 알콜을 공급해주는 오아시스였다. (ㅋㅋㅋ)나를 막 대해주는 그 아이들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 (ㅋㅋㅋㅋ)쉬는 날에는 차나 오토바이로 시내에 놀러가기도 했다.유일한 여자아이인 BIW가 남자친구에게 차였을 때 같이 위로주를 마셨다.며칠씩 다른 지역을 가면 아이들은 언제 오냐, 선물 사와라며 계속 전화를 해댔다.그러면서 태국어가 참 많이 늘었다.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아이들은 내게 태국어를 열심히 가르쳤다.그러던 내게 얼마 전한 친구가 물었다."6일날 우리 다같이 원숭이 보러 가기로 했어. 같이 갈꺼지?""나...사실 말 못했는데, 4일날 한국 가."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친구가 중요한 선언을 하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음...... 그럼 비행기 표 바꾸면 되겠네. 더 있다 가."며칠 후, 내가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한 아이들은내 MP3에 태국 노래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고 자기 USB를 빌려줬다.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다음에 태국 또 놀러올 때, 그 때 돌려줘. 그니까 꼭 다시 와."인건비가 싸고 전자제품은 비싼 태국에서 비싼 물건일텐데,그만 염치도 없이 받고 말았다.꼭 다시 올게.이별이 아니라, 돌아가서도 처음 라온아띠 출국날짜를 설레며 기다렸던 것 처럼다시 너희를 만날 날을 설레게 손꼽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게.4일,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이별을 고하기에도 내게는 부족한 시간.
순간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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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티여우 익 마이?' 안녕-안녕-하는 슬픈 말 대신 아이들은 내 손을 꼭 잡고 묻는다.한국 안보내 줄거야. 라고 억지를 부려보던 친구들도 이제는 체념한 듯 이렇게 묻는다.고작 3일동안 밥만 축내던 우리를 보내며 우리집 메(엄마)가 펑펑 우시며 물었다.모두들, 안녕이라는 인사는 하기 싫은지 내 손을 꼭 잡고 묻는다.'또 놀러 올거야?' 라고. 그럼 또 나는 되묻고 싶다.'왜 또 살러 올거냐고 묻지 않는거야?' 그들도, 나도 알고 있다. 이곳이 내게 영원히 머물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1달간의 홈스테이를 마치고 차에 탈 때 펑펑 울던 우리집 아이도,고작 3일간 많이 먹고 늦게 일어나던 게으른 우리를 보내며 펑펑 우시던 치앙라이 엄마도,나의 '탈선행각'에 큰 도움을 주었던 YMCA와 상관없는 동네 친구들도,매일 우리를 위해 밥을 해 주시던 스탭들도.나는 이곳을 5개월간 느리게 지나가는 사람.이제 나의 발걸음이 4박자를 맞추어 이 곳을 완전히 빠져나가면내가 없었다는 듯이 이 사람들의 일상은 돌아가겠지만아마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학교에 갈때마다 꼬질한 내가 뭐 그리 좋다고 달려들던 도이따오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자전거 타던 쌍캉펭의 예쁜 하늘,매일같이 놀러가서 요구르트 하나 사고 앉아서 놀았던 집 앞 TESCO 친구들,어디 멀리 가서 숙소에 없을 땐 전화를 해서 선물사오라며 한마디씩 시끄러웠던 그 아이들,그 앞에 앉아서 같이 맥주를 마시다가 봤던 밤 거리 풍경,길거리에서 지나가던 코끼리,내가 머리에 쓰고 다니던 수건이 보기 싫다며 확 뺏어버리던 도이따오 선생님들,나를 보내주며 펑펑 울던 매홍손의 꼽,벤이 아닌 자전거를 타며 달리던 길도이따오에서 9살짜리가 모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가던 길,음악을 연주하며 같이 태국 유행가를 불렀던 것놀아달라고 쫓아오는 아이들이 무서워서 자는척하다가 더워 질식할 뻔 했던 것,밤에 몰래 집 앞에 나갔다가 문이 잠겨서 담넘고 들어왔던 기억스탭이랑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싸우고 한달 넘게 말도 안하고 지냈던 것'깨- 너 맨날 까불지만 니가 참 좋은 애라는거 알아. 너 정말정말 좋아해' 했더니얼굴이 빨개지며 자전거로 저 끝까지 달려가 버리던 도이따오 산골아이'YOU! 띵똥 막막 러이 - (띵똥 : CRAZY / 막막 : 너무, 엄-청!)" 하던 치앙라이 아이들별 대단한 것들보다쉽게 지나칠 수 있던 순간들이 기억속에 선명하다.이제 곧 모두가 '과거'가 되겠지만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나를 위로해 준다.너의 영원한 미소 그리워 이 순간들을 다시 헤아려보니 그래도 내겐 기쁨이 더 많았어영원한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우리 기억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이제 모두 영원한 순간이 되려하네참 잘 했다, 라고 스스로 뿌듯해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