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떠나며] 꼭 다시 만나요. 윈둠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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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달간 Ayiramthengu YMCA에서 요가, 스트레칭,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였다.1) 최유진 단원의 한국어 수업2) 강은지 단원의 요가 수업
7월 18-19일 이틀간 인도 케랄라 지역 Uni-Y 멤버들과 함께Indo-Korean Youth Camp를 진행하였다.1) 유세근 단원의 단소 공연2) 한국 전통의상 및 관련 자료를 전시1) Ayiramthengu YMCA 전경2) 옆 동네 Alappad 지역의 해변3) 접니다. 하하하 살이 좀 쪘죠?마지막 활동 지역인 아이람땡구에서 다섯명 모두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고현지 코디와의 갈등도 최고조에 이르렀고일이 없다며 송실장님과 윤간사님께 SOS를 외쳐대고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반대하던 홈스테이를 두번씩이나 했다. 모기한테 50방도 넘게 물려 잠못자던 밤, 우리 숙소가 얼마나 편한건지 새삼 깨닫기도 했다.인도의 보통 사람들 속에 묻혀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정작 내몸은 편한것만 추구했던 게으른 내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소중한 친구들, 또 그들의 가족들, 이웃들과 소통하면서 '참' 인도를 만난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헤어질 때 눈물 한방울 안보인 나에게,그렇게 많은 정을 주지 않았던 모진 나에게,뜨거운 눈물과 함께 진심으로 따뜻하게 안아준 모든이들에게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난니. 윈둠까남!"(고맙습니다. 또 봐요!)
준호와 세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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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오기 전 몇몇 라온아띠 단원들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세근이랑 준호 어떤애들이야? 둘 다 되게 괜찮은 애들 같은데 국내 훈련기간 동안 둘 다 너무 조용해서 얘기를 많이 못했어."세근이 같은 경우에는 팬클럽도 결성 됐었다.회장에 희곤이, 부회장에 은지였나?아직도 이 둘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사진 한 장에 간단한 소개 올립니다. 우리팀에 딱 둘밖에 없는 남자 팀원들,준호와 세근이는 86년생으로 동갑내기이다.준호는 대구에 살고 사진을 전공하고 있고,세근이는 서울에 살고 전공은 보건행정이다. 아무튼 이 둘은 나이도 같고남자가 둘밖에 없는 상황속에서도그러기도 힘들겠다 싶을 만큼 어색했다. (그 둘은 아니라고 우겼지만 여자 셋이 볼 땐, 인도 와서도 한동안 어색함 그자체였다)세근이는 DISC진단으로 극C형이다. 내성적이면서 꼼꼼하고 매사에 신중하다. 겉모습도 그렇듯 매우 어른스럽다. 준호는 I형으로 매사에 설렁설렁 넘어가고,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면서 때로는 소녀같은 감수성을 보일때도 있다. 또 한가지 특징은 놀러가거나 다른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조증'을 보인다는 것? 참! 술도 못마신다. 생긴건 제일 잘 마시게 생겼는데 한잔도 잘 못마신다.이 둘은 성격도 자라온 환경(?)도 많이 달라서친해지는데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둘의 유일한 공통점 '먹을걸 좋아한다는거' 때문에 그나마 친해질 수 있었다. 여자 단원들보다 입맛도 까다롭고 먹는양도 더 적지만먹을게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갈만큼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아무튼 그 둘은 그렇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친해졌다.맨날 팀에 오빠 없다고 툴툴대는 나에게 때로는 친구같기도, 때로는 아들같기도 했던 둘이다.
Photo by 여준호
우리 8월 4일 한국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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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8월 4일 한국 가요.다음주 금요일 마지막이에요.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어쩌다보니 '마지막'이라는 글자 빼곤 수업시간에 가르쳐 주었던 단어들이었다. 한자한자 되뇌며,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새로이 알려주었더니 희곤(18), 세민(16) 두 형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을까? 미안했다.그 다음날, Children's club 아이들과의 마지막 시간.반나절 함께 놀다가 끝날 무렵, 그동안의 모습을 담은 소식지와 즉석사진을 찍어 나눠주는데, 아까 짝피구할 땐 피도 눈물도 없어보이던 씩씩한 우리 아이들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또 미안해졌다.난 하나도 안 슬픈데, 아이들은 슬픈가보다.난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는데, 아이들은 우리가 좋은 친구였나보다.헤어짐이 아쉬워서이기보다는, 아이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에, 그리고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다.초등학교 2학년, 좋아하던 선생님이 전근 가시던 날.초등학교 4학년, 전학 가던 날.초등학교 6학년, 친한 친구들과 다른 중학교 배정받던 날.나에게 몇번 안되는 헤어짐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어딜가나 항상 손님이었던 우리 5명."기힝엔낭"(안녕히계세요)을 자주 쓰다보니 가끔가다 "기힝엔너"(안녕히가세요)를 써야할 때도 "기힝엔낭"이 툭 튀어나온다.가까운 사람일수록 쓰지 않는 단어, 기힝엔낭.이제 그 가까운 사람에게 이 잔인한 말을 해야할 날이 머지 않았다.
Good bye..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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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만 느껴지던 5개월의 기간..
그 기간동안 이곳 케랄라에서 참 많이 웃고 즐거웠던기억도 많지만, 활동기간이 3개월,4개월로 넘어가면서 현지인들의 일하는 방식과 생활방식이 화나다 못해 분노하고 욕하기도 하고 라온아띠를 내던지고 싶을때도 있었다.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 왜 라온아띠에 지원했을까? 라온아띠를 위해서 내가 버리고 포기해야 했던 크고 작은것들...이 생각나 더욱 감정을 격분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떠나고 싶던 케랄라 였는데, 막상 이렇게 오늘 밤 비행기를 타고 이곳을 떠난다고 하니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내가 라온아띠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5개월동안 생활하면서 인연을 맺은 친구들 얼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아쉽게만 느껴진다.
가족과 떨어져서 매끼 카레만(현지인들은 다르다지만 우리가 느끼기엔 카레) 먹으며 함께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던 유진누나,세근,윤아,은지...그리고 이방인인 우리를 망설임 없이 친구로 받아준 마을식구들...그리고 우연히 버스 옆자리에 앉아 우리가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이곳에서 스타라며 우리가 5명이고 YMCA에 지내고 있고 한국인이고 매일 어디서 어디로 이동한다는것을 알고 있던 이름모를 사람들...
그들이 이곳에 주인공인데 내가 주인 마냥 행동하고 그들에게 바라고 그들의 삶에 허락없이 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아직까지 제대로 이룬일 아니 한일 하나 없는데 이렇게 떠난다니...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모르지만 살면서 한번도 못올수도 있지만 확실한건 우리가 서로 잊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수있을거라 믿고, 마음과 웃음을 나누고 눈물을 나눴던 눈이 크고 아름답던 친구들...오랫동안 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을것같다..
우리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은 친구들...난니..나마스까람..보이뜨와란..
랑카신문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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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귀국전에 올릴수 있게되어 정 말 감사드립니다.다들 바쁘신 와중이라서 큰 기대는 안하지만 저희팀 5월생활이니 심심하시면 한번보세요업로드에 민감한 내용이 있어 팀내에서도 의견수렴하고 현지와이랑도 의견 수렴한다고 좀 시간이 길게 걸렸네요여튼 정말 감사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알께요^^파이팅
끝나기 전엔 끝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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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기 전엔 끝나지 않아.
140일째. 끝무렵
이제 보름채 남지 않은 라온아띠.
아마. 나를 비롯한 몇몇의 이는 관계, 혹은 이 라온아띠 생활에 지쳐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둘다 지쳐있다.
관계며, 생활이며 지칠대로 지쳐있다. 나만의 공간없이 지내는 이곳에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자체가 부담이다. 이런글을 적는것에 팀원들은 의아해 할지도 모르지만 지쳤다. 아니 지쳤었다.
몇몇 글을 보면. 다른 라온아띠들에게도 같은 고민들이 있는 것 같다.
손실장님 메일의 관계에 대한 글도 생각난다.
잘버텨온 나. 마지막 한달에 스스로 폭발해 버렸다.
바보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될 때로 되라. 시간아 가라.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버틸테다. 괜히 부담에 부딪치기 싫다. . ....
솔직히 이런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도망치는것 같았다.
이제까지 남이 판단했을 때는 엉망인 생활을 해왔을지 모르지만, 스스로는 그래도 잘해왔던것 같았다. 마지막순간까지 포기하기는 싫었지만 지쳤었다.
마무리가 좋지않으면 훗날 후회할수도, 아마 후회할것이다. 그것을 알지만 사실. 모든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진리는 간단하다는것을 알지만. 실천하는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나의 고민은 얼마되지 않아 실마리를 찾았다.
술먹은호랑이 형의 신곡.
친구가 보내준 신곡에서 타이거형의 ‘죽기전엔 죽지않아’라는 노래
호랑이형은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이였을텐데.
‘아직 늦지 않았다. 눈을 떠도 변치않아. 죽기전엔 죽지않아’ 라고 한다.
JK타이거 형 말대로 죽기전엔 죽지 않아.
지치고 힘들고 피하고 싶은 부담이 있지만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프로젝트도 남아있고, 지켜야할 관계도 끝나지 않았다.
단지 끝무렵 일뿐이지 아직 끝은 아니다.
프로젝트 전단지가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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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Smile Moratuwa 프로젝트.처음 3개월간은 길거리 쓰레기통 설치를 준비하였으나, 시장님과의 미팅후 안전문제(쓰레기통 테러 위험)로 허가를 받지 못하고, 대신 Composter Bin (자동 비료화 시스템)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로 하였다.플라스틱이나 유리처럼 잘 썩지 않는 것을 제외한 일반쓰레기들을 이 통에 넣으면 약 7개월 뒤에 비료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분리수거 생활화, 쓰레기 처리, 비료 획득의 일석삼조 효과를 창출해낼 수 있다.Composter Bin은 다음주에 나올 예정.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엔 현지YMCA에서 잘 사용하는지 알기 위한 star point 제도를 시행하여 지속적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5월 :: 람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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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현지적응을 마친 5월즈음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홈스테이 활동을 시작. 람푼씨티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타캇이라는 동네로 입성하게 되었다.. 두둥!
▶그냥 마을 모습. 하늘이 참 예쁘다. 밤엔 별이 쏟아질거같이-
슬쩍 며칠쯤 지냈던 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으니..
어쨌거나,
이곳에서 하게 된 일은 대략
학교가기+퇴근 후 마을생활하기
쯤이 되겠다.
일단 학교.
▶학교 간판(?).
▶학교 운동장
▶학교 건물(교무실과 4~6학년 교실, 컴퓨터실, 도서실이 있다)
▶아침 조회모습. 아침마다 운동장에 모두 나와 조회를 한다. 국기 게양 후 선생님의 말씀, 아이들의 간단한 스피치 그리고 무예타이 체조로 시작되는 학교의 아침.
▶학교 부속 유치원 아가들도 조회에 함께한다. 교복위에 앞치마를 입은 모습.
아 이에 앞서 마을 입성 첫날에 이루어진 학교 선생님들의 축하회식! 어쩌면 이날부터 우리는 선생님들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회식중. 아직은 낮이라그런지 정갈한 맛이 나는 것 같... 태국인의 삶의 가장 큰 낙인 가라오케가 시작되고부터는 모두가 하나되는 진풍경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오프 더 레코드...
이렇게 시작된 홈스테이. 대략적인 일상을 살펴보자.
▶아침에 무척이나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 모두가 학교 청소를 한다. 보통8시에서 8시 반쯤 조회가 시작되는데 7시쯤부터 학교에 모여드는.. 아침에 학교가기 싫어서 이불속에서 버둥댔던 나를 생각하면 참 기특한 일이다. 게다가 청소까지 하다니.
▶ 무예타이 체조를 하는 따완과 아이들. 저 너머로 파도 보인다.
▶ 요일마다 바뀌는 교복. 오늘은 예쁜 태국 전통의상을 입는 날.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면 병아리 같다. 물론 날보고 외치는 함성을 생각하면....-_-...닭이다...
▶ 학교 건물 안에서 바라본 창밖풍경. 불교국가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는 절들이 마을마다 꼭 하나씩 있다. 학교 옆에 있는 절.
▶아가들과 놀아주고 있는 파와 따완. 자갈을 쌓고 무너뜨리는 정체모를 놀이다.
▶방과후 모습.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데 수업이 끝나면 집에가서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다시 모여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학교가 공부만을 하는곳이라기 보다 아이들의 사랑방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는 셈. 특별히 '피 까올리(한국언니, 누나)'를 집으로 모셔가야 하는 특명을 받은 아이들은 이곳에서 오랜시간 대기하기도 하는데..
▶예쁜 하늘. 그러나 너무 더워서 기력이 쇠했던 기억뿐...
▶내동생 씨빗. 특히 홈스테이 초기에는 내가 어딜가나 뭘 하나 꼭 따라다녀야만 한다고 해서 나를 눈물흘리게 했던 녀석. 나중에는 나따위 아웃오브안중이긴 했다. ㅋㅋㅋ 저 캐리어식 책가방은 요즘 유행아이템인듯. 그야말로 '잇백'인 셈.
▶우리집에 놀러온 아이들. 재밌는건 내가 태국말을 잘 못하니까 아이들에게 애취급 당한다는 거다. 언어구사수준으로 레벨이정해 졌으니.. 아직 저렙이지만 언제나 만렙을 이상으로 하고있다. 어쨌든 나의 부족한 실력이나마 향상시켜준 원어민 선생님들인 셈.
▶이것은 비밀컷! 울 학교 교장쌤의 달콤한 낮잠 도촬 ㅋㅋㅋ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셨던 얼리어답터 교장쌤! 물론 이렇게 주무시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며 대부분은 눈썹 휘날리시며 일하느라 바쁘시다. 하루종일 학교에 있어서 못 뵙는 경우도 있고잉.
▶우리 외증조할머니! 엄마의 엄마의 엄마다. 실제 연세로는 나의 할머니정도. 다들 일찍 결혼해서 일찍 아이를 낳으시는 바람에 외할머니의 연세가 한국엄마의 연세와 비슷했다는.. 외증조할머니께서 지금 하고 계신것은 대나무로 직물짜기(?). 이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것으로 모자를 만든다. 나름 손재주가 있다고 자만했건만 이 엮기를 배우는데 외증조할머니 애를 꽤 먹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인! ㅋㅋㅋㅋ
▶외증조 할머니께서 만드신 대나무줄기(?)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씨빗. 지금 씨빗이 쓰고 있는 모자같은것을 만든다.
▶ 외삼촌할아버지. 아까 외증조할머니께서 엮으신 것을 실로 밖아 모자를 만드신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변화하는 모습. 신기하다.
▶토요일 밤에 서는 싼캄팽 스트리트 마켓.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명소 중 하나. 매주 다양한 물건들이 착한 가격으로 선을 보인다. 현지 사장님들 역시 흔쾌히 깎아주시는 그야말로 매력만점 놀이터.
▶일한다.. 좌맥주 우마우스(혹은 키보드)로 일하는 모습.
대략 이정도.
사실 5월은 홈스테이 적응하느라 개인적으로 힘겨웠던 시기이기도 하다. 가족 외의 사람들과 살아본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말도 잘 안통하는 이들과 한집에 산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이기도 했을 뿐더러.. 사생활(?)에 대한 문화차가 엄청난 폭풍으로 다가왔었기 때문에. 방문을 노크없이 열고 들어온다던가 창문에 커튼이 없어서 밖에서 다 보인다던가 하는 아주 사소한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한계를 슬슬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현지 YMCA스탭들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많은 부분 개선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맞춰주시려고 정말 많은 분들이 노력하신거지.
지독한 개인주의의 노예로 살아오던 내가 해방되는 순간일수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까놓고 얘기하자면 그때의 난 돌아버릴것 같이 힘들기도 했다. '알을 깬다는게 이런거구나'라는 수준에도 이르지 못할 정도로...(의식이 희미해지고 있었던거 같다;; 덕분에 팀원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좋을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다. 미안..-_-*)
어쨌거나 이것이 홈스테이 시작의 단상.
# 2. 6월 5일 ~ 6월 12일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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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6월 5일 ~ 6월 12일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여행길.
9일 새벽 바기오를 떠난 우리는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culture trip’의 컨셉에 가장 맞는 일로코스 지역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한 번,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익사할 뻔 했던 나인지라 우리 스탭의 ‘보라카이 예찬론’에도 시큰둥했거늘,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300년 넘게 보존되어 있는 곳, 400년이 넘은 교회가 있는 곳, 원주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 된 북쪽 지역을 여행책에서 확인하는 순간, 바로 여기라며 내 돈을 털어서라도 가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정말 내 돈을 털게 되었다.-_-;;;;;;;;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했다. 계단식 논을 볼 수 있는 바나우에를 못 간건 천추의 한이 되었지만.
바기오에서 비간으로 향할 땐 이미 우리의 여행길이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것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잘 털렸다는 말도 나오는 마당에 트라우마는 무슨. 그냥 즐기는 거다. 여행의 목적은 여행 그 자체여야 한다. 무언가를 위한 여행은 이미 순수한 설렘을 잃은 것이다.
2. 비간과 라왁, 사라지지 않은 역사의 흔적
9일, 비간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 그렇게 크지 않은 비간이라는 도시는 고풍스러움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었다. 비간에 있던 메스티조 지역은 여행책자에 의하면, 스페인풍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중국식과 멕시코 식이 혼합된 양식의 옛스러운 집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보수가 된 모습들이긴 하지만 300년 넘게 보존되어 있는 그 거리는 뭔가, 세상의 모든 행, 불행을 다 겪은 노인의 얼굴 같았다. 수많은 전쟁이 있었던 필리핀에서 거의 유일하게 폭격을 피했던 곳, 그래서 다 부숴진 벽돌들로 지어진 집들이 거짓말처럼 우뚝 서 있는 곳, 또각거리는 마차소리가 그윽한 울림을 반복하는 곳, 비간은 이런 곳이다.
사실 우리가 둘러본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비간이 어떤 도시라고 얘기하기도 쑥스러울 정도로 잠시 잠깐 머물렀을 뿐이다. 요 것이 이번 여행에서 땅을 치고 아쉬워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날 하룻밤을 묵은 곳은 비간에서 30분 가량 떨어져 있는 라왁이라는 도시이다. 라왁 은 ‘일로코스 노르테(필리핀 최북단에 있는 주)’에 속한 지역으로 비간보다는 조금 더 ‘기록화 된 역사’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느낀 이유는 사실, 비간에 있는 박물관이나 갤러리 같은 곳을 가지 못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라왁에는 ‘마르코스’의 흔적이 살아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9년 망명 도중 사망할 때까지 필리핀을 통치한 인물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어떤 전 대통령처럼 긍,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받고 있는 독재자이자 번영의 구세주이자 전설이다. 라왁 씨티는 그의 고향이기도 하고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저녁이 되기 전 마르코스 박물관에 들렀을 때 우리는 역사적 인물의 실제 시신을 보게 되었다. 곧 망자의 혼이 튀어나올 듯한 시꺼먼 방에 유리와 온갖 꽃에 둘러싸여 있던 그. 한 때는 대통령이었고, 사치 심한 미스 마닐라 출신 미녀의 남편이었고, 또 한 때는 망명자였던 꽤 거창한 삶을 산 사람이 지금은 방부제와 에어컨 바람에 의해 겨우 그 색을 유지하고 있는 시체가 되어 누워있는 것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아닐 것을. 쯧. 조금, 허망함을 느꼈다.
라왁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 김희곤 단원은 라왁까지 갔으면서 또 졸리비에서 치킨을 시켜댔다. 이러다 알을 낳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그가 주문한 스파이시 치킨은 하나도 맵지 않았고 이에 이의 제기를 했다. 그러자.. 종업원은 닭의 살점에다 ‘spicy’’라고 써 있는 깃발을 하나 퐉 꽂아주었다. 허허. 마술의 깃발인가. 꼽기만 하면 치킨이 매워 지는가.. 허허허허-_-^^^
10일 아침, 우리는 필리핀 북부의 바다를 감상하러 떠났다. 바다는 언제나 그렇듯 맑고 투명하고 푸르렀다. 차를 타고 조금만 달려도 바다가 지천으로 있는 필리핀에서 그닥 새로울 풍경은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바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동반자임을 심히 확인시켜 준 다툼이 있었는데 아직 그것들이 가시지 않아 나는 분노에 차 있을 때 였다. 그러나 뭐 금방…. 바다와 풍차와 등대 같은 이름만 들어도 산뜻한 피조물들을 보고 나니 조금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자연의 힘은 위대하기 이를 데 없다. 이후엔 또 다시 마르코스와 그의 가족이 20년간 살았다던 사저를 둘러보고 400년 넘게 보존되어 있는 파오아이 성당을 보았다. 종교에 관련해선 지식이 전무한 나라, 뭐 그 성당을 보고 한 생각이라고는.. 한 자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인간의 추태를 지켜봐야만 했던 그 성당이 참 불운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에게 내리는 가장 큰 형벌은 인간과의 결혼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 죽음을 맞을 수 밖에 없는데 신은 불멸의 존재이니 그저 사랑하는 이들의 부재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왜 그 성당을 보고 문득 그 신화가 떠올랐는지.. 어쨌든, 난 그 곳이 좀 안쓰러웠다.
라왁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비간으로 돌아갔다. 덜 본 듯한 미미함에 견딜 수 없어 없는 시간을 쪼개서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빡빡했지만 그 아련한 느낌을 지속할 수는 있었다. 다시 보니 300년 넘은 건물 양식 따라 만든 초현대식 레스토랑이 눈에 걸렸다. 마치 한글로 정갈하게 ‘스타벅스’라고 써 놓은 것과 같이 뭔가 어긋난 느낌이랄까. 그 유명한 ‘맥도널드’도 메스티조 지역의 건물 양식으로 지어졌고 사람들은 그 거리 입구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팬피자를 즐기고 있었다. 에잇, 좀 그렇다. 어쨌든 우리도 저녁을 체인점에서 먹긴 했다. 김희곤 단원은 또, 또 졸리비에 가고-_-
마닐라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고 12일에 레가스피로 돌아오던 길, 북쪽으로의 여행길을 돌아보며 역사를 훔쳐보는 것은 사뭇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훔쳐봄’을 당할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다들 돌을 던질텐가. 후훗. 쥐도새도 모르게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싶다면 어디 던져보시지.
괜찮은 여행을 했다. 물론 유쾌하지 않은 기억도 있다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신비한 곳을 많이 다녀왔다. 모든 것이 여행의 추억이겠거니 싶다. 희.노.애.락이 다 있었다. ‘애’는 어디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튼. 쿨한 날씨와 녹음이 인상적이었던 바기오, 고풍스러움의 극치 비간, 볼 것 없다고 책에 나왔지만 자연스러운 매력이 눈부셨던 라왁, 이젠 좀 지겨워진 마닐라 호텔ㅋ 명소들을 둘러본 것도 물론 좋았지만 우리끼리 그렇게 미친듯이 웃으며 여행을 했다는 것이 그저 좋았다. 차 안에 압축되어서도 엄청 웃고 풀밭에 갖다 풀어놔도 웃고.. 조증이었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할 일이 산더미. 후우, 남은 날들은 점점 줄어드는데 할 일은 늘어나는 이상한 구조다. 괜찮다. 일 하다가 짜증나면 800장이 넘는 우리의 여행 사진을 보고 또 웃어제끼면 된다. 괜찮아 그래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