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주지 않았음 좋겠습니다.ㅠ
99+
저번 송국장님께서 중간평가 오셨을 때 송국장님께서 해주신 말 중에 가장 인상깊게 들었고 내 마음속으로 되뇌었던 말이 "현지분들에게 상처주지 말고 조용히 귀국합시다"였다. 4개월도 지나고 귀국 날짜가 점점 다가오는 이 시점 자꾸 이 말이 되새겨진다 머릿속으로 .오늘 일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오늘 여느 때나 내가 자주가는 마을에 놀러를 갔다. 이 마을은 아이들,어른들 너무 자연스럽게 놀고 웃음이 많은 동네라고 내 개인적으로 생각을 한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마을 어른들이랑 아이들이랑 함께 배구를 했다. 2시간 정도 함께 했다. 날씨도 흐리고 땅바닥도 진흙투성인데도 마을 사람들과 나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미친듯이 배구를 했다. 옷도 벗어버리고 팬티 차림으로 함께 이렇게 논다는 게 너무 즐거웠다. 센터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현지 스텝과 지내는 시간이 많지 현지 마을 어른분들이랑 지내는 시간이 없기에 이런 시간이 나에겐 너무나 즐겁다. 온몸에 문신한 분, 술이 취하신 분, 갑자기 왈가닥 하시는 분 등 다양한 마을 어른분들이 있지만 이런 분들이랑 함께 어울리는 나 자신을 볼 때 "캄보디아 사람 다 됐다. 캄보디아 살아도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 그분들이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오늘 날씨가 흐리고 비가 조금 조금씩 내리더니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가 쏟아져서 구경하시는 분들이 많이 집에 가고 있던 찰나 웃음이 엄청 많으신 어른 분께서 내 소지품과 옷이 들어있는 자전거를 끌고 급히 가시는 거였다. 나는 깜짝 놀래서 큰 소리로 불러서 서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들었는지 말았는지 계속 가시더니 어느 집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자전거를 대 놓고 계셨다. 나는 괜히 의심하고 놀라서 목소리를 키웠는데 알고보니 마을 어른분은 오히려 내 자전거와 소지품이 비에 젖을까봐 걱정해서 그랬던 것이었다.순간 확 내 자신이 초라했고 그분한테 미안하고 그분한테 괜한 상처를 준 게 아닐까 자꾸 생각이 난다. 머릿속으로는 마을 어른분들이랑 잘 어울리고 있다고 ,나는 이제 캄보디아 사람 다 됐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속으로는 아직 그 분들에게 어느 정도의 경계를 하고 있는 오늘 내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런 내 자신으로 인해 캄보디아 마을 분, 그분이 상처 받지 않았음 좋겠다. 얼굴은 항상 웃으면서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이제 남은 3주동안 누구에게나 상처주지 말고 조용히 한국에 가고 싶다. 조심해야겠다. 말년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던가ㅡㅡㅡ
Berita malaysia 8호 입니다 :)
99+
어느덧 7월이 되었네요. berita malaysia 8호가 나왔습니다 .
이번호에는 여자팀원들이 일하고 있는 pre-school소식과 함께
주말여행, 한국수화와 말레이시아 수화, 열대과일 두리안에 대한 소식이 있습니다.
이번호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다음주에 나올 9호도 기대해주세요 :)
아무데서나 잘 먹고 잘 자는 태국팀:D
6
99+
2009. 6. 23
태국에 온지 벌써 100일이 지났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기 40여일의 시간이 남았다.
이 곳에서 몸에 익숙해지고 배운 것 중에 이동식 생활을 통해 하나가 어디가던지 잘 먹고 잘 씻고 잘 잔다는 것…
베이스캠프인… 이제는 정말 집이라고밖에 생각 안 되는 쌈캉펭 YMCA외에도 정말 여러 곳에서 짧게는 1박2일 길게는 한달 정도의 시간을 숙박을 하였다.
아직 남은 기간 또 이동해서 머물러야 할 곳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태국에서 머물렀던 숙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 쌈캉펭 YMCA (3월 5일~8월4일)
우리의 집!!!! 가장 편한 곳~~
처음 치앙마이 공항에 내려서 Y스탭들이 우리를 데려다 준 곳은 바로 이곳 쌈캉펭 YMCA이다. 빈 교실에 있는 책상을 싹 치우고 서랍장과 빨래 바구니, 옷걸이와 침대 메트리스, 이불, 베개… 이런 섬세한 배려까지 해주신 우리의 포근하고 아늑한 숙소이다.
태국팀 10명중 여자 8명은 한방에 4명씩 2층 205호와 206호에서 지내고 있고 남자 2명은 3층 한방을 쓰고 있다.
처음 왔을 때는 나는 사다리 타기로 뽑아서 따완(수진), 마리(민영), 꿀랍(자하)과 한방을 썼는데 4월이 되면서 플로이(서현), 퐈(희진), 마리(민영)와 한방을 쓰고 있다. 그 후에는 귀찮아서 그냥 방 안 바꾸고 쭉 살고 있다.
이곳의 음식은 Y 스탭이신 피멈과 피낭이 오셔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해주시고, 1층 부엌에 세탁기도 있어서 빨래도 쉽게 할 수 있다. 샤워시설은 화장실에서 하는데 벌레가 좀 많고 찬물만 나오긴 하지만 이젠 적응해서 샤워하는데 불편함은 없다. 다만 비가 온 날에는 날개 달리고 징그러운 벌레가 화장실 바닥과 세면대를 뒤덮고 있는 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Day off를 보내고 있고 저녁이 되면 우리팀끼리만 남아서 각자 혼자 시간을 갖기도 하고 함께 보내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마음도 몸도 이곳에 오면 가장 편한 쌈캉펭 YMCA~! 정말 우리의 ‘집’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이 좋은 곳이다.
2. 람푼 홈스테이 (3월 16,17일 / 5월 19일~7월3일)
모든 라온아띠 멤버는 5명이 한 팀이 되서 각 나라로 파견되어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태국팀만 람푼팀, 쌈캉펭 팀(지금은 더이따오 팀이지만) 이렇게 두 팀이 와서 10명이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태국에서의 대부분의 생활은 10명이서 한팀처럼 같이 생활하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지역에 들어가는 기간에는 따로 지내고 있다.
우리팀인 람푼팀의 경우는 와타캇 스쿨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고, 더이따오팀은 더이따오 프랭8스쿨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10명 한 명씩 다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데, 나의 경우는 람푼팀이기에 람푼에서 생활하고 있다.
3월 중순에 홈스테이를 미리 체험해 보는 기간으로 람푼에서 2박, 더이따오에서 2박을 했었다. 람푼 우리 집에 촘푸랑 같이 2박을 했었는데 그 때는 근처 사는 아이들이 자기집인양 마구 놀러 와서 우리랑 놀아달라고 하고 사람들이랑 말도 통하지 않아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하고 힘들었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고 5월 중순에 홈스테이 들어와서 계속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현재는 태국에서의 생활이 많이 적응되어서 인지 불편하지 않고 난 오히려 집에 있으면 편하다.
우리 집 가족의 경우는 메(태국어로 엄마), 피웨(언니) , 피겜(삼촌?), 봇(우리애기), 야이(할머니) 이렇게 다섯명이서 살고 있는데 야이와 피겜은 나랑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보통 메가 밥 먹거나 여러가지 많이 챙겨 주시고, 피웨는 날 볼 때마다 옷이나 신발 같이 이것저것 선물을 많이 주신다. 그리고 우리 집 귀염둥이 봇은 낯가림이 심해서 처음엔 내가 불러도 들은채 만채 하더니 지금은 만나면 신나게 잡기 놀이를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내 방은 굉장히 아담한데 큰 침대 메트리스가 방 전체를 차지 하고 있고 조그마한 테이블 하나가 앞에 있다. 그리고 나의 친구 도라에몽 인형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23년만에 처음으로 혼자만의 방을 갖게 되었고, 방에 있으면 가족들이 부르긴 하지만 피곤하다고 하면 터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누워서 음악 듣거나 일기 쓰거나 편지 쓰거나… 그냥 그렇게 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샤워시설의 경우는 무려 뜨거운 물도 나와서 따땃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며, 빨래는 가끔 빨래 통에 넣어놓으면 세탁기에 돌려서 다 마르면 우리 방에 옷걸이에 걸어서 주시는데 언제 빨래를 주실지 몰라서 그냥 맘 편하게 쌈캉펭 YMCA가서 빨고 있다.
5월 중순부터 7월초까지 홈스테이 할 예정이고, 평가회를 빼면 이제 일주일도 홈스테이 기간이 남지 않았다. 주말은 항상 쌈캉펭 Y에 가거나 다른 지역에서 생활을 해서 평일에만 홈스테이를 했었는데, 우리 집 가족들이 정말 좋아서 그리울 것 같다. 남은 기간동안 우리 봇이랑 잘 놀고 메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지내야 겠다.
3. 더이따오 홈스테이 ( 3월 18,19일)
3월 중순에 2박 했었던 더이따오 홈스테이.
난 더이따오 팀의 수은이(모아)와 함께 홈스테이를 했었다.
람푼 지역은 시골 동네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분위기라면 더이따오 지역은 산동네(첩첩 산골은 아님)에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는 않다.
수은이네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쨍이라는 유치원 아가와 지내고 있는데 애기도 귀엽고…(너무 놀아 달라고 하는게 수은이는 힘들다고 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잘 챙겨주셔서 편했던 것 같다.
4. 도인타논 텐트 (4월 1일,2일)
태국에서 가장 높다는 도인타논.
이 곳에서 우리는 유스리더들과 캠핑을 했었다.
산속에서 이렇게 텐트치고 자고, 캠프파이어 한 것은 처음이라서 마냥 신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텐트에 2명이 함께 들어가 잠을 잤는데, 제비 뽑기로 라온아띠 한 명과 태국 유스리더 한 명이 짝이 되어 한 텐트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어찌 된게 박촘푸, 김마리(장민영)..이렇게 콘까올리(한국사람) 셋이서 잠을 자게 됐다. 덕분에 밤새 옆 텐트가 시끄러울 정도로 민영이랑 떠들었지만…
이 곳에서 밥은 Y 스탭분들이 신경 써줘서 맛있게 먹었고, 샤워장은 근처 별장 같은 곳에서 편하게 했었다.
밤하늘을 이불삼고, 잔디밭을 요 삼아 잤던 기분… 밤에 산에서 아래를 내려보면서 느낀 자연을 통해 벅참 감동이 있었던 행복한 도인타논 캠핑이었다.
5. 도인타논 카렌족 마을 (4월 3일)
도인타논 텐트에서 2박을 하고 도인타논에서 살고 있는 카렌족 마을에 가서 1박을 했다. 홈스테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건 마을사람 집 한집을 통채로 빌려서 한집은 여자숙소, 한집은 남자숙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텐트를 치고 잤다.
밥은 이번에도 Y스탭들이 해주셨다. 샤워는 화장실에서 했는데 화장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안에 촛불을 키고 했었는데 그리 깨끗하진 않았지만 까올리 쏘까뽁(한국인 더러워)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 그리고 도인타논에서의 잠은 둘 다 침낭에서 잤다.(텐트에서랑 카렌족 마을 집에서 둘다) 사실 침낭에서 잔건 라온아띠 국내 합숙훈련때 양평 가서가 처음이었는데… 이래저래 올해 침낭에서 많이 자게 된 것 같다.
6. Praw 마을 홈스테이 (4월 24일, 25일)
유기농 농산물을 키워 판다는 praw마을.
이 마을에 가서 두 명씩 짝을 지어 홈스테이를 했다.
이번 파트너는 따완(구수진)이었다.
이 마을에서의 기억은 더운 것밖에 없다.
태국은 4월에서 5월초가 건기라 정말 더운데, 이 더위는 살인적이라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햇볕에 몸이 녹아 내릴 지경이다. 쏭크란이 4월중순에 하는데 왜 그때 송크란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쏭크란을 하면 신나게 물을 뿌리고 맞다 보면 더위를 잊고 오히려 추울 정도니깐…
홈스테이 기간에 잠시 농산물 수확 및 포장 도와 드리고 새벽시장 열리는 곳 따라가서 장사 조금 도와 드린 정도… 그냥 그럭저럭 이 때부터 홈스테이 및 짐싸기에 달인이 된 것 같다.
7. 치앙라이 Y호텔 (5월 10일 ~ 14일)
지금까지 묵었던 숙소중에 최고급 이었다.
무려 호텔이었으니깐…
오랜만에 누워보는 폭신폭신한 침대 메트리스, 하얀 시트와 이불, 그리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시설...그리고 맛있는 식사까지!!!
치앙라이에 있었던 기간은 HIV마을 방문, VISA연장하러 미얀마 국경 방문, 댐 만들기 작업등 짧은 기간에 많은걸 경험하고 배운 시간이었고 아무리 힘든 일정 속에서도 숙소가 좋아서 몸과 마음이 편했다.
처음으로 쌈캉펭Y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자발적 가난, 자발적 불편함을 겪으러 왔다고 하지만….
역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편한 것 익숙한 것이 좋은가 보다.
8. 더이따오 프랭8스쿨(6월 5일,6일)
‘Y volunteer for EARTH ‘camp를 하기 위해 유스리더들과 함께 더이따오 프랭8스쿨에 모였다. 프랭8스쿨의 도서관을 정리하고 페인트칠 및 벽화를 그리는 작업이었는데 람푼팀도 더이따오팀과 함께 했다.
오랜만에 간 더이따오였고, 당연히 3월 달에 왔던 홈스테이 집에서 잘 줄 알았는데 유스리더들과 함께 학교 교실에서 자게 됐다.
타이유스리더 아이들과 라온아띠는 다른 교실을 썼는데, 모기장도 쳐 주시고 침낭 속에서 잤다. 이제 침낭이 더 이상 낯설지 않는다.
9. 메홍손 지역 홈스테이 (6월 13일~15일)
원래는 없던 스케쥴 이었는데 우리의 요청과 여러 사람의 의견이 모아져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된 메홍손.
도인타논에서도 봤었던 카렌족이 사는 마을에 방문하게 됐다.
태어나서 이렇게 길이 험하고, 첩첩 산골은 처음 가봤다. 치앙마이 쌈캉펭 Y에서 메홍손 시내까지 차로 3시간(이 길도 중간에 구불구불해서 편한 길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퀴가 큰 썽태우를 타고 3시간 정도 가서 도착한 마을. 썽태우 타고 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에 구불구불한 산길이라 어떻게 올라가나 싶을 정도로 험하고 멀었다.
이 곳에서도 홈스테이를 했는데, 이번엔 2인 한집이 아닌 one by one 한명 씩 한집에 들어가게 됐다.
나는 찐따나라는 13살짜리 소녀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방 한 개를 빌려줘서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갔던 숙소 중에 환경은 최악이었다. 물도 빗물을 받아서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석회가루가 섞여서 뿌연색이었고, 밤에는 불 안 들어 오는 집도 많고 거리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저녁8시만 되면 밖은 달빛만 보일 정도로 깜깜했다. 씻을 때도 우리 집 화장실은 불이 안 들어와서 어둡고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석회물로 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곳 저곳 홈스테이하고, 여기저기에서 자는 거에 단련이 되어서인지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밤이 빨리 찾아와서 다른 곳에 있을 때보다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지만…
태국에 살지만 태국인이 아닌 소수민족.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닮은 카렌족. 그들은 첩첩 산골에서 계속 살아왔기 때문에 그곳이 편해서 사는 걸까. 아니면 갈 곳이 없어서 계속 그곳에서 머물 수 밖에 없는 걸까.
나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가진 것이 없어서 웃고 떠들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이 사람들의 행복이 과연 어떤 색인가 생각해보게 되는 홈스테이 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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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는 3달반동안 9곳의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덕분에 이젠 어디 간다고 하면 짐도 몇 분이면 금방 싸고 자는 것도 씻는 것도 먹는 것도 어디 가서든 적응을 잘 하게 되었다.
7월초에 일주일정도 휴가를 받아서 여행을 가게 됐는데, 아무리 싸고 질 나쁜숙소에 들어가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내가 태국에 와서 무엇을 배웠나.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를 생각하곤 한다. 그게 무엇이라고는 아직 확실하게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이렇게 태국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고 생활할 수 있는 나와 우리팀원들을 보면 많이 성장하게 적응 한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남은 한달 반 동안의 태국에서의 기간도 태국을 좀 더 배우고 적응하면서 지내고 싶다.
아픔 속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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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2009. 7. 3람푼에서의 생활이 내일이면 작별을 한다.
학교에 오면 ‘피차엠~’ 하면서 나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재밌고 친절하신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도, 날 항상 보살펴 주시는 호스트패밀리와 함께 지내는 시간도, 우리의 ‘능썽쌈’하면서 펀치를 날렸던 무에타이 도장도, ‘히우카우’(배고파요) 하면서 양쁠라 두부 먹었던 식당도… 그 외 익숙한 람푼의 풍경들이 오늘 마지막 밤을 보내면 내일 다시 쌈캉펭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처음에 이 곳에 왔을 때 막막했었다.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 할지, 어떻게 가족들을 대해야 할지…
아이들은 우리가 뭐가 좋은지, 피 까올리~(한국인), 혹은 우리의 태국이름을 부르면서 매일 쫓아 다녔다.
우리를 좋아해주고 받아 준 아이들이 예뻤던 것도 잠시… 우리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우리를 점점 지쳐가게 만들었다.
아이들과 노는 대신 우리는 교장실에 앉아서 책을읽고, 다이어리를 쓰고, 컴퓨터를 하고, 편지를 쓰는 등 각자 자기 할일을 하며 학교에서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태국은 이미 생활 기반이 잘 갖춰져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해외자원봉사의 개념은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같이 더러워지고 같이 아파 하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자원봉사의 개념은 너무 달랐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활동을 찾기 보다는 YMCA에서 끌고 다니는 데로 따라 다녔고, 갑자기 스케쥴이 바껴도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듣지 못했고, 심지어 자기네들 스타일에 맞추기를 요구하면서 보고서가 튕긴적도 있었다.
스케쥴은 유동적이었고,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잠깐씩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보다는 항상 ‘안녕하세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다시 만나요’ 등의 짧은 인삿말들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고, 꼬리잡기, 말전달하기 게임, 나따라해봐요, 개구리송, 곰세마리 등 매일 비슷한 패턴의 수업을 하였다.
그리고 한국인만 보면 ‘땐 노바디~(노바디 춰주세요)’하는 사람들 속에서 작년 노바디 열풍때도 추지 않았던 노바디를 연습해서 사람들앞에서 춤을 췄다.
이 곳 생활을 하다 보면 말도 통하지 않고, 여기서 시키는 일조차 잘하는지 모르겠고, 스스로 무언가 찾아서 이곳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데 찾기 힘들었고, 모든게 다 제대로 되지 않는것 같아서 태국에 왜 왔는지에 대해 괴리감이 심했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생활도 엄연한 자원봉사였다.
며칠전에 중간평가를 하기 위해 송실장님과 인천 Y간사님께서 왔다 가셨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송실장님께 자원봉사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자원봉사는 바로 성과물이 보이는 일은 아니지만, 강요 받는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서 즐거운 마음을 갖고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서로 행복해지는 모습을 서서히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항상 끌려 다녔고, 여기서 시키는 일 외에는 제대로 한 것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송실장님은 해외봉사의 경우 그 나라에 따라 자원활동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셨다. 태국같이 기반이 잘 갖춰진 나라는 동티모르처럼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하는 일대신 이 곳 사람들이 노바디를 춰달라고 하면 추는 것이 맞는 거라고 하셨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 뿐만 아니라, 중상층을 위한 복지도 필요한 것이고 피비랜내 나는 전쟁터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 만이 숭고한 자원봉사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자원봉사 하면 절대 빈곤,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등이 먼저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갖고있는 나로서는 이미 기반이 잘 갖춰저 있는 태국이기 때문에 람푼에 와서도 우리가 과연 필요한 존재일지에 대해 회의감이 많이 들었었다.
처음에 나온 수업 시간표는 우리가 일주일에 8시간정도 아이들과 수업할 수 있는 시간이 할당되어 있었다. 그러나 3주차 쯤 되었을 때, 방콕에서 학교 평가를 오셔서 아이들은 우리들과의 수업대신 시험공부에 더 매진을 해야 했고, 우리들을 일주일에 한번 세 시간 몰아서 하는 수업시간 밖에 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 적은 수업 시간 조차도 매번 변동되는 YMCA 일정 때문에 지역활동 하다가 다른 곳에 갔다가 오면서 취소 되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수업했다고 하는 시간은 다섯손가락도 넘지 못한다.
이래선 우리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시간떼우기 아닌가… 그리고 아이들한테 대체 뭘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답답했다.
그러다 내가 찾은 해답은 – 정답이라고 는 확신할 수 없지만 – 무언가를 제대로 해야 겠다는 강박관념을 갖기 보다는 이대로 물같이 흘러가는 스케쥴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한달 반정도밖에 안되는 기간에 한국어를 아무리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해도 아이들이 얼마나 기억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난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2년동안 수업 들었던 중국어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매일 붙잡고 있는 영어도 잘하지 못한다.
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내 오만한 생각일 뿐이었다. 먼 한국에서 건너온 우리를 보며 신기하고 반가워 하는 아이들과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는 거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송실장님이 왔다 가면서 람푼지역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Y에서 왜 람푼과 더이따오를 활동지역으로 선택했는지 생각해 본 사람있냐는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더이따오의 경우는 댐건설을 하면서 원래 있던 마을을 강제로 이주시킨 마을이고 삼모작에서 이모작 혹은 일모작밖에 할 수 없는 지역으로 오게된 마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해주지 않아 10년전에 농민운동으로 피비랜내 나는 지역이었다고 하였다. 왜 산골 마을에 있는 집들이 새 집 처럼 깔끔하고, 길이 반뜻하게 닦여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았냐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람푼의 경우는 원래 농촌마을이었는데 큰 공단을 들어서면서 갑자기 이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원주민가 이주민간의 마찰이 생기면서 마을 환경이 급격히 변해 지역사회가 혼란스럽다고 하셨다.
항상 웃고 있고, 우리들에게 항상 호의적이었던 더이따오와 람푼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그런 아픔이 숨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지역활동을 시작할때쯤 팀내부의 문제, 현지 스탭들과의 마찰, 일에대한 스트레스 등 여러가지가 겹쳐서 하루하루 이겨냈고 아이들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기 보다는 피곤하다고 피해버린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에 이 곳에 내가 왜 왔는지 생각하기 보다는 하루하루 버티는것도 힘든 날도 많았다.
한 달 좀 넘는 시간동안 내가 이 곳 람푼에 와타캇 스쿨에서 지낸 게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마을 전체가 알고 있는 깜짝 이벤트 일지도 모른다. 그 깜짝 이벤트가 이들을 즐겁게 했기에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어 지나친 관심을 표했고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그 호의를 감당하기 힘든적도 있었지만 우리의 존재를 무시하고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은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겉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혼란한 시간을 겪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의 존재가 즐거움이 되고 희망이 되었길 염치 없이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람푼지역에서 우리를 받아준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의 마을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귀여운 덱덱(아이들), 쿤 크루(선생님), 크럽쿠르아 컹 찬(나의 가족) 모두 보고싶을 것이다.
다시 내가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아니 이곳에 오고 싶어 할까? 확실한건 이 곳을 그리워 하긴 할 것이다.
모두 컵쿤막막카. 싸와디카. 촉디나카.
(정말 고마워요 안녕히 계세요, 행운을 빌여요)
4개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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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이 곳은 선뜻 글을 쓰기가 꺼려진다. 비겁하게 변명을 하자면, 원래 글 솜씨가 없는 탓, 다른 라온아띠들의 글을 읽고 기가 죽은 탓, 스리랑카에 온 후로 컴퓨터와 TV와는 완전 작별을 한 탓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곳에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제 시간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4개월이 지났고, 이제 겨우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미 한달 전부터 귀국 비행기를 탈 생각을 하면 눈물이 글썽여질만큼 이곳에 정들어버렸다.어떻게 남은 한 달을 보내야 할 지, 한 달 동안 무얼 해야 할 지 정말 모르겠다. 멍청하게도 가는 시간만을 아쉬워하면서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스리랑카에 4개월을 있었지만, 만약에 사람들이 나에게 스리랑카에 대해 묻는다면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오직 짧은 내 시야로만 본 것들이 스리랑카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들은 이렇다, 여기 문화는 어떻다라고 단정지어 말을 하기가 겁이난다. 내가 스리랑카의 모든 사람을 만나본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모든 일을 체험해 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겪은 스리랑카는 친자식같이 우리를 챙겨주는 YMCA 사람들이 있는 곳, 이제는 우리와 허물없이 친해져버려 똥얘기도 스스럼 없이 하는, 그렇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정말 슬퍼하면서 어떻게 우리를 공항까지 마중나가야 할 지 모르겠다는 코디네이터가 있는 곳, 매일 지나다니는 시장에서 우리를 볼 때마다 공짜로 망고를 건네주는 인심좋은 아저씨가 있는 곳, 일과를 마치고 10분만 걸어나가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5명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집에서 한 솥 밥을 먹고 서로 부대끼며 지낸 4개월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난, 이 곳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러 왔지만, 오히려 이들이 내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난 나누기 보다 받기만 한 것 같다.
저도 잠깐공간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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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들어서 많이 생각납니다치열한 한국사회는 너무 힘들군요 ㅠㅠ 스리랑카의 5개월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걱정은 안했을텐데..고민이라도 사람이라든지 때문에하는 건전한 고민이었다고 생각했는데한국에돌아오니 모든게 걱정이네요.. 취업이니 군대니 돈이니..ㅎㅎ돌아온지 벌써 반년이나지냇는데 너무 그립네요.. 달카레가 ㅋㅋㅋ 2기분들 사진보니깐 이제다들.. 스리랑카인하셔도되겠어요~ ㅎㅎ 이제 2기도 얼마안남았네요 남은시간동안 퐈이팅하시고다들보고싶다고 전해주세요 ㅋㅋㅋ
Berita Malaysia #7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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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번째네요.즐거운 하루되세요.